'약가 인하'의 '암운'…'벼량 끝'에 선 K-제약·바이오산업

등록 2026.04.06 08:00:02 수정 2026.04.06 08:00:12
조성현 기자 j7001q0821@youthdaily.co.kr

건정심 '16% 인하' 의결…14년 만의 약가 규제
"10%가 한계였다"…협회, '비상대응체제' 가동
긴급 이사장단 회의…산업계 충격 최소화 총력
"실패한 제도의 반복" 비판…전면 재검토 요구
손실 1조2천억원 전망…R&D·고용·투자 직격탄
"보건안보 흔든다" 우려…약가정책 전환 '촉구'

 

【 청년일보 】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정부의 전방위적인 약가 인하 규제로 인한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생존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약가 인하 강행에 천문학적인 손실 가능성에 고용 불안감까지 감돌며 K-제약·바이오 생태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 보건복지부의 약가 인하 전격 의결...14년 만의 '규제 칼날'

 

지난달 26일 보건복지부는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열고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겠다는 명목하에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최종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국민의 약품비 부담을 14년 만에 대폭 경감하고 신약의 보장성은 높이겠다고 밝혔다.

 

발표된 개편안의 핵심은 특허 만료 의약품과 제네릭(복제약)의 약가 산정 기준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건정심 결과는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정부가 확정한 기본 산정 비율은 당초 업계가 예상했던 감내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16% 약가 인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약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원료를 직접 생산하거나 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국가필수의약품 등에 대해 약가를 우대하겠다는 보완책을 덧붙였지만, 이는 규제로 인한 손실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 "고통의 한계를 넘었다"…한국제약바이오협회 '긴급 성명' 등 비상체제 가동 

 

정부의 발표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27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이하 협회) 산하 '산업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즉각적인 입장문을 발표하고 깊은 유감과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산 전문의약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국내 주요 제약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대에 불과하다. 이처럼 극도로 열악한 경영 여건 속에서도 산업계는 국민 부담 경감이라는 정부의 대의에 동참하기 위해 최대 10%의 약가 인하까지는 감내하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왔다.

 

하지만 건정심은 업계가 읍소했던 '마지노선'인 10%를 훌쩍 뛰어넘는 16% 인하를 확정 지었다. 비대위는 입장문에서 "이는 산업계가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 한계이자, 최소한의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기준이었다"고 성토하며, 이번 결정이 불러올 막대한 피해와 보건안보 훼손에 대해 경고했다.

 

물론 협회 역시 원료 직접 생산이나 국산 원료 사용에 대한 약가 우대 대책, 약가 인하 대상을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단계적 시행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산업계가 감당해야 할 막대한 피해 규모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 제약바이오업계, 긴급 이사장단 회의 개최…산업계 충격 최소화에 '총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협회는 지난 2일 긴급 이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의 단일 목적은 하나였다. 건정심에서 의결된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한 향후 대응 계획을 논의하고, 폭풍처럼 밀려올 산업계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총력전을 펴는 것이었다.

 

이사장단은 약가 개편안이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급력을 정밀 분석하고, 구체적인 자구책 수립에 나섰다. 우선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회원사들의 문의 사항을 전수 취합하고, 이달 중 온·오프라인 설명회를 열어 현장의 혼란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비대위의 상설화 및 협의체 전환 검토다. 오는 14일 다시 비대위를 열어 지속가능한 산업 성장을 논의하는 상시 협의체로의 전환을 추진함으로써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에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우려가 현실로"…업계 일각 "이미 실패한 제도의 반복"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한 업계의 극렬한 저항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앞서 지난해 12월 22일 약가제도 개편 비대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정부가 추진 중이던 개편안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다.

 

당시 기자회견문에서 비대위는 "1999년 실거래가제도 도입 이후 10여 차례 약가 인하가 단행됐지만 제도의 효과와 산업 영향에 대한 입체적인 평가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며 정부의 졸속 행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2014년 실패로 판명 나 폐지됐던 '시장형 실거래가제'의 변형된 반복을 우려했다. 저가 구매 인센티브를 확대할 경우 제약사들이 떠안아야 할 막대한 할인 공급 손실액만 원내 시장 7천300억원, 원외 약국 시장 2조4천300억원 등 도합 3조1천6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구체적 추정치도 제시했다.

 

당시 협회는 약가 인하를 강행할 시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결국 국민 건강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절규했으나, 끝내 정부는 이 목소리들을 외면한 채 3월 건정심 의결을 강행한 셈이다.

 

 

◆ 제약업계 CEO 긴급 설문조사 실시…1.2조 증발 속 R&D와 고용에 '직격탄'

 

정부의 '16% 약가 인하'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국내 제약사들이 입게 될 실질적인 타격 규모도 가시화됐다. 협회가 제조시설을 갖춘 정회원사 59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는 국내 제약산업이 직면할 위기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설문에 응한 59개사의 예상 손실액을 합산하면 1조 2천100억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당 평균 233억원에 달하는 매출이 고스란히 증발하는 셈이다. 이는 대형 제약사뿐만 아니라 기초 체력이 약한 중견·중소 제약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협회에 따르면, 제약산업의 미래 성장동력인 연구개발(R&D) 부문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약가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59개사 중 절반이 넘는 51.5%가 R&D 투자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의 평균 투자 축소율은 17.1%에 달해, 신약 및 개량신약의 파이프라인 중단 등 심각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미래를 대비한 시설 및 공장 투자 역시 '절벽'을 맞이하게 된다. 조사 대상 기업들의 설비투자 감소액은 평균 135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대기업(10.3%)이나 중견기업(28.7%)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축소율은 52.1%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시설 선진화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의 꿈이 원천 봉쇄될 위기에 처했다.

 

고용 시장에 미칠 파장도 심각하다. 설문에 참여한 59개사의 총 종사자 3만 9천170명 중 9.1%에 달하는 1천691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국내 제약산업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에서만 1천326명의 감원이 예고돼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정면 배치된다.

 

아울러 약가 인하로 채산성이 맞지 않게 된 제약사 10곳 중 7곳(74.6%, 44개사)은 준비 중이던 제네릭 의약품의 출시를 전면 취소하거나 보류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장기적으로 시장 내 저렴한 의약품 공급이 중단돼 환자들의 약품 선택권을 제한하고, 오히려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보건안보 둑 무너뜨리는 근시안적 규제…패러다임 전환 시급"

 

현재 글로벌 제약·바이오 자본 시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 및 유가 불안 등으로 인해 대외적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더해지자, 업계에서는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기반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단순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의 수단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국가적 전염병 사태나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보건안보'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국가 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평균 5%대의 낮은 영업이익률 속에서도 신약 개발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16%의 약가 인하가 강행될 경우, 산업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9개사에서만 1조2천억원이 넘는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1천700여 명에 달하는 전문 인력의 감축이 예고된 만큼, 정부가 현장의 위기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환자 보장성 강화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약가 인하 중심의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산업의 기초 체력을 유지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상생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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