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간호법' 본질 '숙련 간호사' 확보…합의 위한 노동시장 개선 필요

등록 2023.05.19 08:07:25 수정 2023.05.19 08:07:34
오시내 기자 shiina83@youthdaily.co.kr

 

【 청년일보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간호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와 이에 따른 국민의 불안감,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동안 간호법을 둘러싸고 간호사·의사·간호조무사·특성화고교 등 이해당사자들이 갈등을 빚어 왔다. 


의사단체들은 간호법을 두고 간호사들의 독자 진료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독자 진료가 가능해지면 간호사의 무면허 수술과 처방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간호사·간호조무사·특성화고교 사이 분쟁은 보다 복잡하다. 


간호조무사의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놓고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이하 교육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이하 간무협)가 대립해 왔다. 


현행 의료법 제80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필요한 학력 기준은 '고교 졸업'으로, 특성화고등학교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교육훈련기관에서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는 간호조무사 관련 전문대를 졸업하더라도 다시 학원에서 수업을 들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교육은 이론 740시간, 의료기관·보건소 실습 780시간 혹은 병원·종합병원 실습 400시간 이상으로 구성되며 이를 모두 이수하려면 통상 1년 내외의 시간이 필요하다. 


간호법 제정안에는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필요 학력을 '고교 졸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놓고 간무협은 학력 요건을 '고교 이상 졸업'으로 변경할 것을, 교육협회는 '고교 졸업'을 유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의견이 갈리는 건 학력 요건 폐지 시 전문대 간호조무사 학과가 개설될 가능성 때문이다. 교육협는 전문대에 간호조무사 학과가 생길 경우 대졸과 특화성화고를 졸업한 고졸 사이에 임금 및 취업 기회의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해 왔다.


이에 간무협은 지난달 20일 국회 소통관 2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간호특성화고 졸업생 2천48명 중 70%가 간호대 등 대학에 진학하고, 간호조무사로 취업한 사람은 20%에 불과하다"면서 "우리 85만 간호조무사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학력제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간호사 업무 규정에 대해서는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와 간무협이 대립해 왔다. 


현행 의료법 제80조 2항은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간호사를 보조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때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서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진료를 보조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많은 의원에서는 간호사보다 간호조무사를 더 많이 채용하고 있다. 간무협에 따르면 동네의원에 종사하는 80%가 간호조무사다. 


대립의 시작이 된 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조항에서 등장하는 '지역사회' 때문이다.


이를 두고 간무협은 간호법에 '지역사회'가 명시된다면 현재는 간호사 없이도 일할 수 있었던 장기요양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 시설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21년 3월 간호법 발의안에는 제안 이유로 "숙련된 간호사 수요의 급증"과 "열악한 근무환경의 개선과 인력 수급 불균형의 해소"를 언급했다. 


이를 통해 "공공보건의료기관 등에 안정적으로 인력을 배치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국민 생활과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각종 감염병의 퇴치 및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2022'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우리나라 간호대학 졸업자는 42.4명으로 OECD 평균인 34.4명보다 높았다. 


반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전체 간호 인력은 인구 1천명당 8.4명으로 OECD 평균인 9.7명보다 적었다. 게다가 전체 간호 인력 중 간호사는 4.4명으로 OECD 평균인 8.0의 절반 수준이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전체 간호 인력 중 절반이 간호사, 나머지 절반이 간호조무사인 셈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원과 병원은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수를 기준으로 30개 미만이면 '의원', 30개 이상이면 '병원'으로 분류된다. 종합병원은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추어야 한다. 


법에 따르면 의원은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기관이며, 병원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기관이다.


통상 입원환자의 경우 외래환자 보다 질병의 정도가 심한 것은 사실이나, 두 기관은 모두 전문성을 가진 이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원에서 종사하는 간호 인력 중 간호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간협, 간무협, 교육협의 대립 중심에는 일자리가 놓여 있다. 교육협은 고졸 출신 간호조무사가 받을 차별을, 간무협은 간호법 제정에 따라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의 일을 대체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한다. 


이는 비단 의료계에서만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다. 그동안 법무사들은 변호사의 업무 영역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간호법은 열악한 간호사들의 처우와 인권침해뿐 아니라 얼어붙은 한국의 노동시장과도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2018년과 2021년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대선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OECD 통계와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대책을 비추어 보면 간호법 제안의 이유였던 전문성을 가진 숙련된 간호사 인력 수급을 위한 방법이 강구돼야 하는 건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다. 


이같은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각 이해당사자가 원만히 받아들일 새로운 대책과 노동시장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청년일보=오시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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