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15번째 장소로,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에서 강북의 신흥 부촌이자 바이오·교통 허브로 천지개벽한 동대문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1943년 구(區) 제도 실시와 함께 탄생한 동대문구는 서울 동북권의 '종가(宗家)'다. 과거 성북구와 중랑구도 동대문구에서 분리돼 나갔을 만큼, 이곳은 역사적으로 서울 확장의 모태이자 동쪽 관문 역할을 해왔다.
면적 14.20㎢에 약 36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동대문구는 오랫동안 이름값에 비해 재정 여건이 열악한 자치구로 꼽혔다. 구의 상징인 화려한 '동대문 패션 타운'이 행정구역상 중구와 종로구에 속해 있어, 정작 동대문구는 그 경제적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대학 캠퍼스(비과세 토지)와 노후 주거지, 영세한 전통시장이 대부분이라 세수 기반이 취약했고, 재정자립도는 서울 하위권인 20%대에 머물러 왔다.
하지만 2026년 현재, 동대문구의 경제 지표는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청량리 일대 초고층 주상복합 입주와 이문·휘경 뉴타운의 완성이 막대한 재산세 수입 증대와 인구 유입을 견인하며 구의 살림살이까지 바꿔 놓았다.
기차 여행의 설렘과 낙후된 유흥가의 그늘이 공존하던 곳. 개발의 시계가 멈춰있던 이 땅은 이제 65층 마천루가 솟구친 '강북의 강남'으로 다시 태어났다.
◆ '교통 지옥'에서 '광역 허브'로...청량리의 비상
동대문구 변화의 정점은 단연 청량리역이다. 과거 춘천 가는 기차를 타려는 대학생들과 유흥가의 취객들이 뒤섞이던 역 광장 앞에는 강북권 최고 수준의 65층 랜드마크 '롯데캐슬 SKY-L65'가 위용을 드러냈다.
지하철 1호선과 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에 이어 현재 공사가 한창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C 노선은 청량리의 미래 가치를 증명한다.
GTX 개통과 함께 청량리가 수도권 교통의 심장부로 도약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낙후됐던 역사 주변은 백화점과 호텔, 오피스가 결합한 거대 상권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동대문구의 변신이 단순히 아파트만 올라가는 '베드타운'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홍릉'에 있다. 청량리역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홍릉 일대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KAIST(한국과학기술원) 서울캠퍼스, 고려대병원 등 우수한 연구 인프라가 집결된 곳이다.
서울시는 이 잠재력을 활용해 홍릉을 '바이오·의료 R&D 거점'으로 집중 육성해 왔다. 2026년 현재, 이곳에는 수많은 바이오 스타트업과 연구소가 입주해 활발한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소비와 유흥 중심이었던 지역 경제 체질이 첨단 산업과 일자리가 창출되는 '생산 기지'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동대문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평가된다.
◆ "시장통이 힙(Hip)하다고?"...경동시장의 회춘
초고층 빌딩 숲 바로 옆,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의 전통시장은 또 다른 차원의 변화를 겪고 있다. 국내 최대 한약재 시장인 '서울약령시'와 농산물 도매시장인 '경동시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낡은 시장은 2030 세대에게 가장 '힙'한 놀이터가 되었다. 폐극장(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들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젊은이들은 마트 대신 시장 좌판에서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간식을 찾고, SNS에 낡은 시장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린다.
물론 급격한 변화에 따른 성장통도 존재한다. 65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여전히 낡은 시장의 천막과 노점들이 얽혀 있는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고급 주거 단지로 입주한 신규 주민들은 시장 주변의 소음과 위생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존 상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과 삶의 터전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문·휘경 뉴타운 입주로 인한 교통 체증 심화와 대학가 원룸촌 소멸에 따른 학생 주거난 역시 동대문구가 풀어야 할 숙제다.
경동시장의 한 상인은 "젊은 손님들,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와서 사진도 찍고 하니 활기가 돈다"면서도 "하지만 바로 길 건너에 저렇게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니, 여기나 약재시장이나 언제까지 이 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는 지금 '혼돈'의 역사를 끝내고 '정돈'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기차역의 소음과 집창촌의 그늘로 기억되던 회색빛 도시는 이제 마천루의 스카이라인과 첨단 바이오 산업, 그리고 시장의 활기가 어우러진 역동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의 흉물에서 동북권의 경제·문화 거점으로. 동대문구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도시가 어떻게 과거를 지우고, 또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며 진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