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10번째 장소로, 성곽의 옛 정취와 뉴타운의 변화가 공존하는 성북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 도심의 북쪽, 북악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흐르는 성북구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시'다. 4대문 안의 복잡함을 벗어나 성문을 나서면 마주하는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도성의 외곽을 지키는 요충지이자, 근현대 예술가들의 안식처였다.
오늘날 성북구의 공간 서사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계층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성북동의 대저택들과 좁은 골목을 밀어내고 마천루 아파트가 들어서는 장위·길음동의 재개발 현장, 그리고 8개 대학이 뿜어내는 청춘의 에너지가 한 데 뒤섞여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 성(城)의 북쪽, 누에 치던 뽕밭이 역사의 무대로
성북(城北)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한양도성의 북쪽'을 의미한다. 조선 태조 때 한양도성이 축조되면서 도성의 북쪽 경계를 담당하게 된 이곳은, 혜화문(동소문)과 숙정문(북소문)을 통해 도성과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 시대 성북동 일대는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며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고 풍년을 기원하던 제단인 '선잠단(先蠶壇)'이 있던 곳이다. 뽕나무가 무성했던 성북천 주변은 평화로운 농경지였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도성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어영청의 북둔(북쪽 주둔지)이 설치되면서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췄다.
지리적으로는 북한산과 북악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형세로 북쪽의 정릉동은 북한산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고, 서쪽의 성북동은 한양도성을 품은 북악산 자락에 안겨 있어 예로부터 수려한 경관을 자랑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을 피해 조용한 창작 공간을 찾아 나선 문인과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란민들이 성곽 아래 가파른 언덕에 판자촌(북정마을 등)을 형성하며 치열한 생존의 터전을 일궜고,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권력자와 부호들이 숲세권 명당을 찾아 대저택을 지으면서 빈(貧)과 부(富)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 구조가 완성됐다.
◆ '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의 품격
성북동은 강남의 화려함과는 결이 다른, 대한민국 '전통 부촌'의 원형과도 같은 곳이다.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아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은 재벌 총수들의 자택과 각국 대사관저가 밀집해 있어, 높은 담벼락 너머로 은밀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남의 부촌이 화려한 마천루라면, 성북동의 부촌은 오래된 나무와 기와가 어우러진 격조 높은 풍경이다.
하지만 성북동의 진정한 가치는 '부(富)'가 아닌 '문화'에 있다. 우리 문화재의 수호신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 '간송미술관', '한국의 모파상'으로 불린 소설가 이태준이 집필 활동을 했던 고택 '수연산방'이 이곳에 자리한다.
또한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최순우의 '옛집',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깃든 '길상사'까지 성북동의 골목길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문화 예술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아카이브다.
개발의 광풍도 이곳만큼은 비껴갔다. 겹겹이 둘러싸인 규제 덕분에 성북동은 낮은 스카이라인과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이제 성북동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며, 바쁜 일상 속 '쉼표'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머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 서울 최다 대학 보유, '청춘의 해방구'
성북구의 또 다른 얼굴은 '젊음'이다. 고려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한성대학교 등 무려 8개의 4년제 대학이 관내에 위치해 있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수치로, 학기 중이면 수만 명의 대학생들이 골목골목을 누비며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학가는 성북구의 경제와 문화를 지탱하는 실핏줄로 안암동(고려대)과 동선동(성신여대) 일대는 저렴한 물가의 식당과 카페, 하숙촌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캠퍼스 타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과 성북구청, 지역 사회가 협력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낙후된 골목 상권을 되살리는 '캠퍼스 타운 조성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청년 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명암도 존재한다. 비싼 등록금과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학교 주변의 낡고 비좁은 원룸이나 고시원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대학가 상권 역시 젠트리피케이션과 비대면 수업의 여파로 예전만 못한 활기를 보이고 있다.
◆ '미아리'의 눈물 닦고 '뉴타운'으로 환골탈태
성북구의 동쪽, 길음동과 장위동 일대는 서울 강북권 도시 정비 사업의 태풍의 눈이다. 과거 좁은 골목과 노후 주택이 밀집해 '달동네' 혹은 집창촌인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며 낙후된 이미지가 강했던 이곳은 2000년대 이후 대규모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서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미 사업이 완료된 길음뉴타운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강북의 대표적인 주거 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서울 최대 규모의 뉴타운 지구인 '장위뉴타운' 역시 올해 3월 4구역(장위자이 레디언트)의 입주를 기점으로 이제 1만 가구가 넘는 매머드급 브랜드 아파트 숲으로 탈바꿈하며 강북의 신흥 부촌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특히 성북구의 오랜 숙원 사업이자 '미아리 텍사스'로 불렸던 신월곡1구역은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돌입하며 성매매 집결지의 오명을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고 있다.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최고 46층, 2천201가구 규모의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단지는 지하철 4호선 길음역과 지하로 직접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완공 시 성북구가 단순한 베드타운을 넘어 강북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상권의 중심지로 도약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길음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25년을 기다렸던 철거 작업이다"라며 "(주변) 빌라촌 정리는 다 돼서 여기만 하면 되는데, 주민들은 최대한 빨리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길음뉴타운보다 훨씬 더 역과 가까워 입지는 비교가 안 된다"며 "장위보다도 더 낫다"라고 밝혔다.
◆ 보존과 개발 사이, 성북구의 미래
성북구는 지금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고 있다. 서쪽의 성북동은 역사를 보존하며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동쪽의 장위·길음동은 과감한 재개발을 통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제는 남아 있다.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재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그리고 대학가 청년들의 주거 빈곤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또한, 급격한 아파트 건설로 인한 교통난 해소와 부족한 자족 기능 확충도 시급하다.
성곽의 고요함과 대학가의 낭만, 그리고 재개발 현장의 치열함이 공존하는 성북구. 과거의 시간을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 도시의 실험이 서울의 균형 발전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