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③ 강남구, '논밭'에서 '글로벌 상업지구'로, 50년의 공간적 전환

등록 2025.11.09 08:00:00 수정 2025.11.09 08:00:08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압축 성장의 유산과 트렌드 소비 지형의 진화, 강남 상권의 역동적 공간 재구성
토지 개발과 문화적 랜드마크...도시 인프라 재정비 과제에 직면한 강남의 미래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세 번째 장소로, '계획된 도시'의 성공 신화이자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강남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강남구는 1970년대 영동(永東)지구 개발과 함께 서울 도시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개발 당시 서울 인구 과밀 해소와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가 투영된 강남은 불과 반세기 만에 고밀도 주거 환경, 금융, 상업 기능을 집적시키며 서울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 '계획된 도시'의 탄생: 토지 개발과 랜드마크의 형성
1960년대 말, 현재 강남이라 불리는 지역은 강북 도심민들에게는 황량한 한강 이남의 외곽일 뿐이었다.

 

신사동, 압구정동 일대는 배밭이나 뽕나무밭이 펼쳐져 있었고, 강변에는 모래톱이, 내륙에는 작은 논밭이 산재한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었다.

 

생활 편의 시설이나 교통 인프라가 전무했기에, 정부가 처음 대규모 택지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때도 사람들은 "저 논밭에 누가 가서 사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실제로 강남은 개발 초기, 한강 이남 외곽이라는 인식 탓에 분양 미달 사태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년),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착공 등 교통 인프라 확충과 서울고와 경기고 등 명문 학교의 강제 이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급속한 성장의 기틀이 마련됐다.

 

1970년 초, 강남 땅 한 평이 약 2만원 수준이었으나, 개발 붐을 타고 급속도로 가격이 상승하며 토지 가격 변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 부촌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를 넘어 '성공적인 도시 이주'의 상징이 되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 상권의 역동성과 공간의 유연성
강남의 상업 공간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서울 트렌드의 실험장 역할을 해왔다.

 

1990년대 압구정 로데오에서 시작돼 2000년대 IT붐을 따라 테헤란로의 오피스 지구(IT 및 스타트업 밀집)로 이어지며 중구의 금융 중심 위상을 나누어 가졌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신사동 가로수길은 '강남 속의 홍대'라 불릴 만큼 청년 디자이너, 예술가, 독립 카페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적 감성을 꽃피웠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유동인구 증가와 상권 활성화가 임대료 급등으로 직결되면서, 가로수길은 급속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개성 강한 초기 청년 상인들은 성수동, 망원동 등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권 이동 현상'을 겪었다.

 

그 빈자리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국내외 대형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나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채워졌다.

 

상권은 재편되었지만, 창의적인 콘텐츠보다는 거대한 광고판이 즐비하게 늘어선 획일화된 모습이 되었다.

 

이는 강남이 청년 문화적 '가치'를 빠르게 소비하고 상업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시 공간의 역동적인 재구성이자, 자본의 논리가 공간의 정체성을 얼마나 빠르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실제 가로수길 인근에서 2년 전부터 소품점을 운영하는 A씨는 "저희 같은 소품 가게는 객단가가 낮아서 임대료가 부담 되는게 사실"이라며 "처음에 들어올 때도 공실이어서 큰 부담은 없었는데 이 건물도 언제 재건축을 할지 몰라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 도시 인프라 재정비와 주거 환경의 과제

강남구는 고밀도로 압축 성장한 도시로서 인프라의 한계와 주거 환경의 불균형이라는 과제에 직면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는 도시 인프라 확장의 한계다.

 

2011년과 2022년 반복된 강남역 일대의 심각한 침수 사태는 도시 개발 당시 하수 처리 시설이 급격히 늘어난 고밀도 도시 구조를 감당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개발 만능주의'가 남긴 뼈아픈 역설로, 도시 계획의 미래를 위한 재정비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강남은 주거 환경의 이질성과 불균형이 서울에서 가장 극명한 지역 중 하나다.

 

압구정, 청담, 대치동 등 고가 아파트 대단지가 즐비하지만, 그 배후에는 30년 이상 노후화된 저층 빌라 및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이 공존하며 주거 환경의 격차를 드러낸다.

 

강남의 공간은 이미 '완성된 성공의 증명'과 '남겨진 노후화'라는 극단으로 이분화되어 서울 도시 계획의 숙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주거 환경의 극심한 격차는 단순한 경제적 지표를 넘어, 서울이 극복해야 할 계층 간의 물리적 경계를 상징한다.

 

강남이 진정한 미래 도시 전략을 갖추기 위해서는, 눈앞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주거 격차 해소와 노후 인프라 재정비라는 근본적인 과제에 직면해야 할 시점이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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