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729/art_17529819727588_9590ff.png)
【 청년일보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주 대법원으로부터 '부당합병·회계부정'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법 리스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그룹 경영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사법 족쇄가 완전히 풀림에 따라 재계 안팎에선 반도체 초격차 회복, 신성장동력 발굴 등을 향후 이 회장의 중대한 과제로 제시한다.
특히 반도체 등 주력 사업 부진에 따라 삼성의 위상이 과거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등기이사에 복귀해 법적으로 경영의 권한과 책임을 지는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1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원심의 전부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는 재판에 넘겨진 지 4년 10개월 만이자 2심 선고 후 5개월여 만에 나온 결론이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15년 이 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부정거래와 회계부정 등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검찰이 제시한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으며,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원은 검찰이 확보한 서버, 외장하드, 장충기 전 사장 휴대전화 등 주요 증거들이 압수수색 절차상 위법하거나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2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또 재무제표 처리 역시 재량범위 내의 판단으로 봐 회계부정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사회 결의, 합병계약, 주주총회 승인 등 합병 절차 전반에서 부정거래나 시세조종이 있었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회장 측은 무죄가 확정된 데 대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면서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처럼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지음으로써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했지만, 이 회장의 잦은 법정 출석으로 사업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삼성이 사업 경쟁력 약화, 굵직한 현안과 관련한 의사결정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갈수록 날로 첨예화되고 있는 상황 속, 수년간 재판에 발목이 잡히면서 삼성은 경쟁력에 뒤처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 만큼, (이 회장은) 온전히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신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내 메모리 경쟁력 회복"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삼성전자는 AI 시대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납품 통과가 지연되면서 메모리 실적 부진에 대한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33년간 수성했던 'D램 왕좌' 타이틀을 HBM 분야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내줘야 했다. 설상가상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도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7.7%로 직전 분기보다 0.4%포인트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TSMC의 시장 점유율은 전분기 대비 0.5%p 증가한 67.6%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중국 SMIC(6%)와의 격차도 좁혀지면서 자칫 수년 내 점유율이 삼성전자를 앞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HBM 시장에서의 부진, 파운드리 대규모 적자 등 DS 부문 전체의 위기감이 팽배해진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사법 리스크 해소를 기점으로 삼아 수익성 개선방안 등 반전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각에선 사법 족쇄를 벗은 만큼,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해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현재 이 회장은 국내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이다. 앞서 이 회장은 2016년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뒤 박근혜 정부에서의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2019년 등기 이사에서 물러난 뒤 6년째 미등기 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사법 리스크라는 안개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회장은 최우선적으로 이사회 복귀 여부부터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사회에 복귀한다면 통상적으로 매년 3월 정기 주주총회 때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성이 처한 대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해볼 때 연내라도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이 회장이 이사회 복귀를 저울질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과거 미래전략실(미전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재건에 나설지 역시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룹 계열사의 경영 전반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조타수 역할을 해오던 미전실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2017년 폐지된 상태이며, 삼성은 전자·금융·EPC(중공업 등)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사업지원 TF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분산된 구조로 인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엔 다소 한계점이 있다는 평가가 줄곧 제기돼 왔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수년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그동안 삼성그룹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최종 무죄 확정을 받으며 자유의 몸이 된 만큼, 컨트롤타워 복원 등 조직 재정비에 나서 중장기 사업전략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