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위한 찬반투표 절차를 시작하며 실력행사에 나선다. 반도체 호황기에 힘입어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상황에서,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일각에선 생산 공백은 물론, 공급 차질에 따른 글로벌 고객사와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전국삼성전자노조·삼성전자노조동행 등으로 구성된 공동투쟁본부는 이날 오전부터 18일까지 열흘간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 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한다.
공동투쟁본부는 전체 조합원의 과반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할 경우 4월 전 조합원 집회, 5월 총파업 등 투쟁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투표가 가결돼 법적 쟁의권을 확보한 노조가 실제로 파업을 행사할 경우, 삼성전자는 지난 2024년 7월 이후 약 2년여 만에 '파업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회사는 평균임금 및 성과급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창사 이래 첫 총파업'이라는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번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은 초과이익성과급(OPI)의 상한 폐지 여부다. OPI는 당해 실적이 목표를 넘어서면 초과이익의 20% 내에서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성과급 제도다. 특히 회사는 연간 영업이익에서 법인세와 투자금 등 자본 비용을 차감한 '경제적 부가가치(EVA)' 지표를 기준으로 성과급 규모를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OPI의 핵심 지표인 EVA 측정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해온 바 있다. 특히 OPI 상한선 때문에 회사 성과 대비 직원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적다며 상한선 폐지를 주장했다.
사측은 상한 폐지 시 목표 달성이 어려운 일부 사업부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신 사측은 ▲임금 인상률 6.2%·자사주 20주 지급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경우 영업이익 100조원 달성 시 OPI 100% 추가 지급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OPI 상한 자체를 폐지할 것을 거듭 요구하며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쟁의찬반투표를 앞두고 입장문을 통해 "사측은 OPI 상한 폐지가 일부 사업부에만 혜택을 주어 다른 사업부에 박탈감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정한 박탈감은 '열심히 일해도 기준을 알 수 없을 때'와 '경쟁사는 이미 하는 것을 우리는 못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파업으로 발생하는 손실과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는 것보다, 제도를 바로 잡아 노사 상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경영"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반도체 공정 특성상 치명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조합원의 약 5만 명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소속이라는 점이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될 HBM4의 생산 스케줄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업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에 성공하며 공급 궤도에 진입했으나, 웨이퍼 투입부터 패키징까지 통상 6개월이 소요되는 제조 공정 특성상 노조가 예고한 5월 파업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어 제조가 한창 진행돼야 할 해당 시기에 공정이 멈출 경우, 일각에선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신뢰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을 고려해볼때 파업이 주는 치명성은 클 수밖에 없다"면서 "반도체 패권 경쟁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시기에 고객사 물량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고객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건 물론, 경쟁사에 주도권을 내주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