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돌봄의 공백, 복지의 사각…'가족돌봄청년'의 하루는 누가 돌보는가

등록 2025.11.09 12:00:00 수정 2025.11.09 12:00:09
청년서포터즈 9기 조서영 seoyeong5345@gmail.com

 

【 청년일보 】 "10명 중 1명의 청년, 그러나 '이름'조차 없는 존재"

 

가족의 질병이나 장애, 혹은 노쇠로 인해 가족의 돌봄을 책임지는 '가족돌봄청년'이 우리 사회의 그늘 속에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학업과 취업 준비, 그리고 청년으로서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을 희생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공식적인 이름'조차 제도로 부여받지 못한 채 그들의 고통은 사회의 시야 밖에 머물러 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공동 조사(2023년)에 따르면 장애, 중증질환, 정신질환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13~34세 청년은 약 9.4%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질적으로 이는 최소 15만 3천 명의 청년이 가족돌봄 청년으로 추정된다. 이는 청년 10명 중 1명꼴로 막대한 돌봄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는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부담이 이들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당 평균 21.6시간 가족을 돌보고, 조사에 응답한 '가족돌봄청년'의 절반 이상이 학업, 취업에 지장을 호소한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은 일반 청년 대비 7배, 생활 불만족도는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들의 상당수가 취업, 진로, 주거 위기와 같은 추가적인 부담까지 겪으면서, 현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 국제사회는 호명하는데, 한국은 '무반응 국가'

 

가족돌봄청년은 막대한 노동과 희생을 감수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고는 무급, 비공식적, 비가시적으로 취급되며, 사실상 국가가 져야 할 돌봄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가 이들을 복지 체계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반면, 영국은 이미 1995년 young carer라는 용어로 청소년 돌봄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들에게 수당 등을 지급하며 지원하고 있다. 여러 선진국들이 이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법률 근거 및 각종 제도를 마련해 온 데 반해, 국제 비교 연구에서 한국은 지원이 미비한, 이른바 '무반응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를 가족 간의 당연한 책임으로 간주해, 정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로 남겨져 있다. 이러한 고립감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보건복지부·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돌봄 경험이 있는 청년의 72%는 주변에 그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현재, 한국에서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 조례와 시험 사업이 시작됐으나, 전국적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부족해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돌봄 부담은 개개인의 전언, 사회적 침묵으로 남으며, 공식 통계나 연구 조사에서도 다소 추계 차이가 있으나 모두 명백한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보고되는 만큼, 더 이상 대응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 복지의 공백을 메우려면 '보이는 이름'부터 필요하다

 

가족돌봄청년의 고립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적 인식 전환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핵심적인 정책 제언은 세 가지다.

 

첫째,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실행한 후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을 공식적인 복지 대상자로 명시하고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학업·취업 연계를 유연화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국과 일본의 제도를 참고해, 학교에서 이들을 조기 발견하고 휴학 대신 'Respite care(돌봄휴식)'제도 등을 도입해 돌봄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심리상담 및 휴식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돌봄 노동으로 인한 감정노동과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는 정기적인 심리 상담을 지원해야 한다.

 

◆ 돌봄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어야 한다

 

청년 돌봄자의 문제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누가 돌봄의 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사회 구조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다. 가족이 국가의 빈틈을 메우는 동안, 돌봄의 무게는 가장 약한 개인에게 쏠렸다. 그들은 조용히 부모의 약을 챙기고, 휠체어를 밀며, 자신의 삶은 잠시 멈춘다. 사회는 이들의 헌신 위에 서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보상을 외면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미래세대의 잠재력을 지키고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인 의무다. 이 청년들이 자신의 꿈과 돌봄 책임을 저울질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제도적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

 

이에 "그들의 하루는 누가 돌보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그들의 헌신을 인정하고, 그들의 하루를 돌보기 위한 '눈에 보이는 이름'과 '정책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조서영 】




저작권자 © 청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35길 4-8, 5층(당산동4가, 청년일보빌딩) 대표전화 : 02-2068-8800 l 팩스 : 02-2068-8778 l 법인명 : (주)팩트미디어(청년일보) l 제호 : 청년일보 l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6 l 등록일 : 2014-06-24 l 발행일 : 2014-06-24 | 회장 : 김희태 | 고문 : 고준호ㆍ오훈택ㆍ고봉중 | 편집·발행인 : 김양규 청년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9 청년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youth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