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2025년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율이 20%를 넘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전체 인구의 20.3%가 65세 이상으로, 2019년 대비 2024년 노인요양시설은 1천45개(약 29.1%) 증가했으며, 입소정원은 6만2천350명(약 35.8%)으로 확대됐다.
노인 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의료 인프라 확충을 이끌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서적 돌봄의 부재'라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신체적 간호는 이루어지고 있으나,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돌봄'은 여전히 제도 밖에 놓여 있다.
필자는 보건의료통합봉사회 활동 중 강원 원주의 한 요양시설을 방문했다. 당시 김OO(88) 어르신을 대상으로 고혈압 관리와 근력 강화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혈압의 정상 수치, 영양 관리, 운동법 등 기본적인 교육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봉사 중 어르신이 운동을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단순한 '교육'이 돌봄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분이 필요로 한 것은 운동 방법과 같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힘겨움을 알아주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대화를 이어가며, 어르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알게 되었고, 매일 아침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습관을 갖고 계셨다. 필자는 그 동작을 활용해 '손바닥 밀어내기 운동'을 제안했고, 어르신은 "이건 꼭 할게요. 기도하는 마음으로요"라며 웃으셨다.
그 미소 속에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신앙과 일상이 연결된 그 순간, 어르신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존재하고 있었다.
요양시설은 돌봄과 생활 지원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장기 입원 노인들의 정서적 외로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 요양시설 입소 노인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가족과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낀다"고 토로하며, 시설을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의 장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건강과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필자가 만난 어르신 또한 오랜 투병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고, 과거의 후회와 불면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르신은 점차 표정이 편안해졌고, 다음에 또 오라며 '먼저 알아보겠다'고 웃으셨다. 이 경험을 통해 의료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관심과 경청'임을 깨닫게 되었다.
요양시설에 상주한 노인 대부분은 가족 방문이 드물고, 의료진과의 대화 시간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인들은 '환자'로 머무르며,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을 상실한다. 그 결과 "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외로움이 커지고, 존엄은 점차 희미해진다.
간호학에서는 흔히 "간호는 과학이자 예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현장에 서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고혈압 관리에 대한 정보보다, 환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시간이 훨씬 큰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노인을 존중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일이다. 이러한 정서적 교감이 곧 회복력의 원천이 된다.
결국 간호사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넘어, 그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켜내는 존재인 것이다. 간호는 단순히 의학적 처치가 아닌 인간관계의 예술이며, 정서적 돌봄이 병행될 때 의료는 비로소 완전해진다.
일본은 치매와 만성질환 노인을 대상으로 '커뮤니티 케어 시스템'을 운영하며, 의료진·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가 한 팀으로 지역사회 내 돌봄을 제공한다. 또한 영국은 '웰빙 원칙'에 따라, 요양시설이 의료적 처치뿐 아니라 입소 노인의 '정신 건강과 정서적 안녕'까지 포괄적으로 책임지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요양병원은 여전히 의료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정서 지원 프로그램, 말벗 봉사, 문화활동이 제한적이며, 간호 인력은 과중한 업무로 환자의 '감정'을 살필 여유가 없다.
봉사를 마칠 때 어르신은 아쉬운듯 내 손을 잡고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그 손의 온기와 눈빛은 잊히지 않는다. 의료가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과정이 되어야 함을 그날 배웠다. 요양시설에서 여전히 수많은 노인들이 누군가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약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손, 그리고 존중의 시선이다. 그 시선이야말로 진정한 의료의 출발점이며, 간호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지역사회와 병원, 대학이 협력하여 '정서 돌봄 통합 프로그램'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간호대학생이나 청년 봉사자가 참여해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운동하거나 대화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활동은 그 자체로 의료의 확장이다. 노인에게는 위로가 되고, 청년에게는 인간 중심 간호를 배우는 실제적 교육이 된다. 이러한 접근이 단기 치료에 머물던 의료를, 환자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초고령사회에서의 간호는 생명 유지 중심에서 '존엄 유지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정서 돌봄 인력 확충, 병원 내 말벗 봉사 제도화, 간호대학의 인문·정서교육 강화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비로소 삶의 끝까지 존중받는 돌봄 체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강다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