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예방에 나섰지만"...'동의'에 막한 대책 속 법안은 '표류중'

등록 2026.03.18 08:00:07 수정 2026.03.18 08:00:21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임대인 재무 정보 조회에 동의 필수...정보 비대칭 해소 실효성 의문
대항력 발생 시점 조정 주임법 개정안 표류...시스템 완비 전 보호 공백 우려

 

【 청년일보 】 누적 피해자 3만5천909명, 피해 금액 4조7천억원에 달하는 전세사기 비극을 멈추기 위해 정부가 AI 기술과 법 개정을 총동원해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실시간 정보 연계 시스템 구축과 대항력 발생 시점 조정을 통해 선제적 예방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지만, 핵심 재정 정보 조회 시 임대인의 동의가 필수적이고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어 '실효성 있는 국가 책임 완수'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AI 기반 위험 진단 시스템 구축, 대항력 발생 시점 조정, 공인중개사 책임 강화 등 3대 축의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동의 없이는 열리지 않는 정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 '다가구 주택에서의 불완전한 AI 시세'라는 세 겹의 구조적 한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먼저 이번 대책의 핵심은 부동산 등기부·전입세대 확인서·체납 정보·신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묶어 예비 임차인에게 제공하는 '전세계약 위험진단 서비스'다. 주소만 입력하면 선순위 권리금액과 위험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정보의 성격에 따라 접근 조건이 다르다는 점이다. 부동산 등기 정보는 공개 정보여서 임대인 동의 없이 연계할 수 있지만, 체납액이나 신용 연체 정보는 여전히 임대인의 동의를 전제로 수집·제공된다.


정부 분석 결과 전세사기 피해 유형 중 47.6%가 임대인 정보 파악의 한계로 인한 무자본 갭투기 사례로 확인됐다. 이는 임차인이 충분한 정보 없이 위험 계약을 맺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 포함된 체납액 및 신용 연체 정보 등 핵심 재정 정보 조회는 여전히 임대인의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유지한다.


정부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전까지 임대인 동의 방식으로 2026년 9월부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간 플랫폼과의 연계도 검토할 방침이나, 강제성이 없다는 구조적 한계는 여전하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사기 등의) 의도가 있는 임대인이 동의를 거부할 경우 임차인의 정보 접근이 사실상 차단되며, 동의 거부 행위 자체가 경고 신호로 인식될 체계도 부재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대목으로는 전세사기의 고질적 경로로 이용되어 온 대항력 시차라는 법적 사각지대를 정조준했다는 점이 꼽힌다.

 

그간의 현행법은 임차인이 이사를 마치고 전입신고를 하더라도 대항력은 '다음 날 0시'에야 발생한다. 반면 근저당 등기는 접수 즉시 효력이 생긴다.

 

때문에 임대인은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마친 당일 0시가 되기 전까지 몰래 대출을 받아 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고, 근저당이 임차인의 대항력보다 먼저 성립하면 임차인의 보증금은 후순위로 밀리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대항력 발생 시점을 '전입신고 즉시'로 앞당기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3월 중 국회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관련 개정안이 아직도 2024년 6월부터 5개의 의원 발의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편법은 피해 유형 비중이 0.1%로 낮지만, '구조적으로 임차인이 불리한 법'이라는 점에서 시급한 개정 사안으로 꼽혀 왔다.


통합 시스템 구축도 2026년 8월까지 완료를 목표로 하지만 법 개정과 시스템 구축이 모두 완료되기 전까지 약 5개월간의 공백이 불가피하다.

 

이 기간에도 혹시모를 피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근본적 예방책'만 내세우며, 정작 가장 근본적인 법 개정은 국회 문턱에서 멈춰 있는 셈이다.


또한 정부는 이번 시스템에 AI를 활용해 예비 임차인에게 '적정 보증금 수준'을 진단해 주겠다고 밝혔다. 한국부동산원 AI 시세와 공시가격 대비 적정 수준, 유사 사례 분석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가 가장 절실한 다가구 주택에서의 시세 산정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동일 평형·동일 층의 거래 사례가 풍부해 AI 모델이 참조할 데이터가 충분하다.

 

반면 다가구 주택은 동일한 건물 내에서도 호수마다 면적·구조·층수가 달라 표준화된 시세 비교가 쉽지 않다.

 

실제로 정부 발표안에 따르면 아파트·오피스텔 등 다가구 제외 대상의 등기 정보를 우선 활용하고, 다가구 적정 보증금 수준 진단은 '공시가격 대비 적정수준 및 유사사례 분석' 등 대안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위험도 진단 서비스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잘못 보낼 경우, 오히려 임차인이 더 방심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중 상당수는 등기부를 확인하고 중개사의 설명도 들었음에도 피해를 당했다.

 

'시스템이 괜찮다고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나'는 질문이 나올 때, 책임의 소재를 어디에 둘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그간 전세 계약을 사적 자치 영역으로 방치했던 것이 피해를 키운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은 정확하다"라며 "방향성에는 공감하나 동의 의존형 정보 시스템, 계류 중인 법안,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AI 시세 산정이라는 세 가지 약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대책은 '예방'보다 '예고'에 가까울 수 있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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