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우리는 '최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효율적인 선택. 최적화는 언제나 합리적이며, 따라서 정의롭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적화는 언제나 어떤 기준을 설정한 뒤 이루어진다. 비용을 최소화할 것인가, 시간을 단축할 것인가, 이윤을 극대화할 것인가. 문제는 그 기준이 이미 하나의 가치판단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생산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한다면, 그 결과는 인건비 절감, 자동화 확대, 혹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숫자상으로는 '최적'일지 모르지만, 그 결정이 노동자에게도 정의로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플랫폼 알고리즘 역시 마찬가지다. 사용자 체류 시간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자극적인 콘텐츠가 더 많이 노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또한 시스템 관점에서는 최적이지만, 사회 전체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최적화는 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가 무엇을 최적화할 것인지 정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효율을 최우선으로 둘 것인가, 공정성을 고려할 것인가, 안전과 인간의 존엄을 포함할 것인가. 문제는 우리가 '최적'이라는 단어 뒤에 그 선택의 책임을 숨겨버린다는 데 있다. 마치 수학적 계산이 도덕적 판단까지 대신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시스템도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다. 따라서 최적화는 단순한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의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세상을 설계할 것인가?
최적화는 정의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의로움을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그 목표를 설정하는 인간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허진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