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효(孝)라는 이름의 노동 편취, 여성 간병인의 건강권을 묻다

등록 2026.02.15 08:00:01 수정 2026.02.15 08:00:13
청년서포터즈 9기 이나연 864leena@gmail.com

 

【 청년일보 】 한국 사회에서 가족 간병은 오랫동안 미덕과 도리라는 숭고한 언어 뒤에 숨겨진 여성의 눈물겨운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어 왔다. 유교적 전통에 기반한 가부장적 관습은 돌봄의 책임을 특정 성별, 특히 며느리와 딸의 몫으로 당연시해 왔으며,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은 '효(孝)'라는 문화적 규범 아래 무급 노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한 개인의 신체적, 경제적 안녕을 무너뜨리며 유지되는 돌봄이 과연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인지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에서 노부모 간병은 여전히 공적 영역보다는 사적 영역인 성인 자녀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특히 장남의 배우자인 며느리가 간병의 중심축을 담당해 온 전통적 구조는 최근 딸들의 참여가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도 여전히 견고하다. 문제는 이러한 비공식 간병(informal care)이 사회 제도적 뒷받침보다는 관습에 의존하면서, 돌봄 주체인 여성의 노동 가치를 무상으로 편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병은 단순히 시간을 할애하는 정적인 활동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일으켜 세우고 수시로 수발을 드는 과정은 상당한 수준의 육체적 노동을 수반한다. 실제로 간병을 수행하는 여성들은 간병을 수행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 심각한 신체적 통증과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주관적 건강 상태를 '나쁨' 혹은 '보통 이하'로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러한 건강 악화는 다시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간병을 수행하는 며느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본인의 외래 진료비로 연평균 약 47%(9만4천원 이상)를 더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Do et al. 2015). 타인을 돌보는 행위가 정작 자신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경제적 빈곤 위험을 높이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며 돌봄의 공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요양 시설에 대한 낮은 사회적 신뢰와 가계의 본인 부담금 문제는 결국 여성을 다시 가정 내 '무상 간병인'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여성을 대체 불가능한 무상 돌봄 자원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인습은 여성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공공 보건 예산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하여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간병은 더 이상 효도라는 개인적인 가치에만 맡겨둘 영역이 아니다. 여성 간병인의 건강 악화가 국가적 보건 비용의 증가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들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간병인 휴가제의 실효성 있는 운영과 더불어, 돌봄을 가족의 의무에서 사회의 책임으로 전환하는 돌봄의 사회화를 향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평온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그 무거운 짐을 나누어 져야 할 때라고 본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이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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