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서울시가 재개발 사업의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재건축 수준으로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정비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획기적으로 낮춰 멈춰 섰던 도심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일각에서는 '주거 공공성 포기'와 '집값 자극'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법 바꿔 조례까지 손질"...수익성의 마법, 어떻게 가능한가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국토교통부와의 실무 협의체에서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은 정비사업 용적률 혜택에 따른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재개발은 초과 용적률의 50~75%, 재건축은 30~50%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조례를 통해 두 사업 모두 하한선인 50%를 적용 중이다.
서울시의 구상은 상위법인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개발의 비율 범위를 재건축과 동일하게(30~50%) 맞추는 것이다. 법이 개정되면 서울시는 조례를 고쳐 임대 비율을 최대 30%까지 낮출 수 있게 된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직관적으로 용적률 300%를 적용받는 1천세대 규모 단지를 가정할 때, 이번 완화안이 적용되면 임대주택 물량은 기존 150세대 수준에서 120세대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줄어든 30여 세대는 고스란히 일반분양 물량으로 전환된다.
최근 서울 상급지 '국평(전용 84㎡)' 분양가가 20억원을 호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조합은 약 600억원의 추가 수익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조합 설립 동의율 요건을 현행 75%에서 재건축과 동일한 70%로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라, 사업 속도와 수익성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임대 줄면 집값 뛴다"...공공성 훼손·주거지 외곽화 우려
다만, 개발 이익에 치중한 나머지 주거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완화가 자칫 투기 수요를 자극하고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공공임대 축소가 서민 주거 안전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심 핵심지 재개발 구역에서 임대 물량이 줄어든다면, 서민과 청년층은 일자리와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 도심에서 거주할 기회를 잃고 경기도나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는 '비자발적 이주'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효주 참여연대 주거조세팀장은 "서울에는 공공택지가 없기 때문에 건설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재개발밖에 없다"면서 "추가적인 공급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 비율만 줄이게 되면 사실상 서울에서는 임대주택 공급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값 자극'도 뇌관이다.
사업성 개선이 확실시되면, 시세 차익을 노린 갭투자 등 투기 세력이 재개발 예정지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해당 지역의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고, 결과적으로 서울 전체 집값을 자극하는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박 팀장은 "용적률 상향에 따른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개발이익 환수 장치가 바로 공공임대"라며 "그걸 줄이겠다고 하는 것은 많은 개발이익을 조합에 주고, 결국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발 규제를 계속 완화하는 방식은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주택가격 상승의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세입자들이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토부 "확정된 바 없다" 선 긋기...신중론 배경엔 '여론 부담'
이처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국토부는 전날 일부 언론의 보도 직후 반박자료를 내고 "서울시와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바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공급 확대라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자칫 '부자 감세' 논란이나 '집값 불안'의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정부의 부담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없으므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의 문제인데, 지금은 공급을 늘리는 데 포커싱(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라며 "공급을 늘리려다 보니 조합이 싫어하는, 즉 공급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에 대해 손을 좀 봐주겠다는 취지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올라가는 부분이 더 문제라고 (정부가)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