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비어 있는 식탁, 비어 있는 마음: 식품 미보장 시대의 정신건강

등록 2025.06.07 08:00:02 수정 2025.06.07 08:00:10
청년서포터즈 8기 강혜인 hein-1313@naver.com

 

【 청년일보 】 “요리할 시간도 의욕도 없어요. 마트에 갈 돈보다 편의점 할인이 더 익숙하니까요.”

 

청년 1인 가구의 식생활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바쁜 일상, 제한된 경제력, 고립된 주거 환경 속에서 규칙적인 식사와 균형 잡힌 영양 섭취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영양보다 속도, 가격보다 접근성을 우선하게 된 식사는 어느 순간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하루를 만든다. 식사를 거르는 일이 습관이 되고, 값싼 탄수화물 위주의 끼니가 반복되는 가운데 이 빈약한 식탁은 단순히 신체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건강의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식품 미보장(Food Insecur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식품 미보장이란 경제적·물리적 이유로 인해 충분하고 안전한 음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단순한 배고픔을 넘어 삶의 질 저하와 정서적 고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회적 문제다.

 

최근 여러 연구에서 식품 미보장과 열악한 식단 품질이 정신 건강 악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이 보고되었다(Davison, Gondara and Kaplan, 2017; Martinez, Frongillo, Leung and Ritchie, 2018). 또한 '사회복지정책'(2025)에 실린 양다연·허예진·이정미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계층에 따라 식품 미보장 경험률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고소득 가구에서는 23.0%였던 반면, 저소득 가구는 41.2%로 약 2배 가까이 높았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통계에 그치지 않는다. 청년의 식생활과 정신건강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비정규적인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인한 시간 부족, 물가 상승에 따른 식재료 구매 부담, 요리 환경의 부재, 식생활 교육의 공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건강관리 정책은 대부분 개인의 선택과 실천에만 책임을 돌려왔다. ‘제대로 먹고, 스스로 관리하라’라는 조언은 실질적인 지원 없이 청년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말로 전락했고, 결국 살 수 있는 식재료도, 쉴 수 있는 시간도, 함께할 수 있는 관계도 부족한 현실에서 정신건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청년의 식사 문제는 나태함이 아니라, 사회가 제공하지 못한 선택지의 빈곤이 만든 결과다.

 

이제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조건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정신건강 또한 마찬가지다. ‘왜 안 챙겨 먹냐’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하면 함께 먹을 수 있을까’, ‘무엇을 바꾸면 이 식탁이 가능해질까’를 묻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들이 밥 한 끼를 온전히 챙길 수 있도록,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청년 대상 식비 지원, 커뮤니티 기반의 공동 식사 프로그램, 자취생을 위한 식생활 상담 확대 등 생활 기반의 실질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과 지자체, 보건소는 고립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영양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신건강을 논할 때, 식생활을 정책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누구나 식사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보건정책이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일이다. 비어 있는 식탁은 곧 비어 있는 마음이다.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
 


【 청년서포터즈 8기 강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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