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보존 vs 공급 속도"...딜레마 속 서리풀 2지구 개발 "난항예고"

등록 2025.12.08 08:00:00 수정 2025.12.08 08:00:10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국토부, 2일 '조기 보상법' 시행하고 서리풀 첫 적용..."공급 위해 1년 단축 필수"
천주교·주민 "750년 된 단종비 가문 터전... 전체 면적 2%도 안 되는데 강제수용"

 

【 청년일보 】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난 해소를 위해 '보상 절차 조기화'라는 강수를 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시행하며 지구 지정 전 보상 착수라는 속도전에 돌입했으나, 첫 시험대인 서초 서리풀 지구(2지구)에서 예기치 못한 암초에 직면했다.

 

해당 구역 내 천주교계와 원주민들이 "개발 면적의 1.88%에 불과한 성당과 역사 마을만이라도 제척해달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조직적 반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송동마을 주민들은 “법적 대응”과 “물리적 저지”를 동시에 예고하며 강대강 대치를 선언했다.

 

 

◆국토부 "속도가 곧 공급"...법 개정 통해 서리풀 직행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공포·시행된 개정 법률을 통해 지구 지정이 완료되기 전이라도 사업시행자(LH)가 토지·물건 조사를 실시하고 협의 매수에 착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통상적인 보상 기간을 최대 1년 이상 단축하겠다는 계획이며, 내년 1월 지구 지정을 앞둔 서리풀 지구를 최우선 적용 대상으로 확정했다.

 

정부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보상 협의에 응하는 주민에게는 '협조 장려금'을 지급하되, 퇴거에 불응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인도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김배성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은 "장기 지연되던 보상 절차에 빠르게 착수해 주민들의 기다림을 줄이는 것이 공익"이라고 강조했다.

 

 

◆천주교계 "전체 면적의 1.88%... 알박기 아닌 생존권"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맞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초 12지구 11개 성당 사제단 26명과 신자 및 주민 9천519명은 구체적인 수치 등 근거를 내세우며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송동마을 비상대책위원회가 국토부에 제출한 청원서에 따르면, 존치를 요구하는 우면동 성당과 송동·식유촌 마을의 면적은 서리풀 지구 전체의 약 1.88%에 불과하다.

 

이들은 "전체 사업 면적의 2%도 되지 않는 공간을 보존한다고 해서 정부의 주택 공급 목표(2만호) 달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서리풀 지구는 이미 지구 지정 공람 절차를 마쳐 행정 절차의 80%가 진행된 상태”라며 “정부가 중간에 법을 바꿔 우리에게 적용하려는 것은 꼼수”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률 자문단 검토 결과, 이는 행정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려 주민들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으로 ‘신뢰보호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며 “이에 대한 법적 조치를 이미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알박기가 아니라, 개발과 보존이 양립 가능한 '부분 개발'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지역이 단순한 노후 주거지가 아니라는 점도 쟁점이다. 송동마을은 고려 원종(1270년) 때부터 형성된 750년 역사의 여산 송씨 집성촌이자, 단종비 정순왕후의 부친인 송현수의 묘역이 자리한 역사적 공간이다.

 

대책위는 "국가가 나서서 문화적 콘텐츠를 발굴해도 모자랄 판에, 조선 왕실의 역사가 깃든 마을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것은 반문화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환경 보호한다며 묶어놓고 이제 와서 개발(?")...행정 모순에 '끌탕'

 

주민들은 행정의 일관성 부재도 강하게 질타했다. 서울시는 그동안 송동·식유촌 주민들의 그린벨트 해제 요청에 대해 "환경 보호와 도시 난개발 방지"를 이유로 번번이 거절해왔다.

 

그러나 이번 국토부 발표에서는 동일한 지역을 고밀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청원서는 이에 대해 "환경 보호라는 명분으로 50년간 재산권을 묶어놓고, 이제 와서 공공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강제 수용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행정 편의주의"라고 꼬집었다.

 

실제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멸종위기종인 맹꽁이와 수리부엉이가 서식하는 등 생태적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수용 방식에 대해서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책위는 마을의 지적도를 공개하며 정부가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지도를 보면 놀랍게도 붉은색 부분이 전부 사유지다. 국유지는 가늘게 표시된 파란색 부분뿐인데, 그마저도 정상적인 토지가 아닌 하천이거나 불포장 진입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이 넓은 사유지 전체를 국유화하겠다고 하면서, 주인인 우리에게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설명이나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원주민들이 수백 년간 살아온 터전을 법 조항 하나 앞세워 뺏으려는 폭압적 행태”라고 성토했다.

 

 

◆내년 1월 지구 지정 '분수령'...정부-대책위 '강 대 강' 충돌 속 대치 예고


국토부는 12월 내 현장 조사 용역을 발주하고 보상팀을 가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우면동 성당 주임 백운철 신부를 포함한 사제단과 주민 대표들은 "보상금 액수 협상은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대책위 관계자는 “주민 90%가 이미 반대 의견서를 냈다. 사유재산을 멋대로 수용하고 안 나간다고 벌금까지 물린다는 발상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현장 조사가 시작될 경우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내비쳤다.

 

대책위 관계자는 “지금도 마을 내에서 측량이나 조사 행위가 발견되면 주민들끼리 제보해 접근을 막고 있다”며 “만약 조사단이 강제로 진입을 시도한다면, 물리적 충돌은 너무도 뻔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전체 면적의 1.88%를 제척해달라는 주민들의 '핀셋 요구'와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통합 개발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는 국토부의 '원칙론'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내년 1월로 예정된 지구 지정 고시가 사태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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