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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은 전우 비명소리 아직도 생생"…6.25 참전 노병(老兵)의 회고

'견위수명' 정신 공로 인정…장 부회장, '화랑무공훈장' 수훈

 

【 청년일보 】 "6.25 사변이 나던 해인 1950년 12월, 백척간두에 놓인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원입대를 선택하게 됐죠. 전쟁 참상이 아직까지도 머릿 속에 잊혀지질 않아요. 그 중 화천군 금성천에서 방어 전투를 할 당시 교통호에서 총을 맞은 병사가 살려달라고 했을 때의 잔상이 계속 남아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느덧 74주년이 돼간다. 한반도 전역에 걸쳐 3년 넘게 이어진 6.25 전쟁 개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남한에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했고 수도 서울은 사흘 만에 함락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붕괴되기 직전, 1950년 9월 15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국군은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파죽지세의 기세를 몰아 압록강까지 북진했지만 예기치 못한 중공군의 참전으로 38선까지 물러나게 됐다. 이후에도 밀고 밀리는 전투를 이어오다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3년 1개월 간의 장기간 전쟁 후폭풍은 거셌다. 국군과 UN군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도 죽거나 크게 다친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국군 전사자 수는 13만7천899명, 유엔군 전사자 3만7천902명, 민간인 피해(사망·학살·부상·납치·행방불명)는 약 100만명에 달했다.

 

특히 약관(弱冠·20세)도 채 되기 전 학생들의 희생정신이 깃든 부분도 새삼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꽃다운 나이에 풍전등화에 빠진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교복 대신 군복을 입고 교복모자 대신 철모를 쓰며, 펜 대신 총을 든 것이다.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만 18세 장근식 군도 학업을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6.25 사변이 발발하면서 '안위'보단 '살신성인'의 길을 택했다. 이같은 숭고한 호국정신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나아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로 오르게 한 원동력이다. 

 

청년일보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참전유공자회 부회장직으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장근식(92) 옹을 만나 생생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교복모자 대신 철모 썼다"…장근식 부회장, 중학교 4학년 학도병 자원입대

 

한 낮 기온 최고 30도까지 오르는 등 때이른 여름 날씨를 보였던 지난달 27일 오후, 기자는 서울시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6.25 참전유공자회는 2001년 한국전쟁의 역사적 교훈 영구발전과 참전 기념사업 수행을 통해 참전유공자의 명예선양, 국민들의 호국 안보의식 고취, 자유 민주주의 수호 및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됐다.

 

참전 유공자회 홍보부장의 안내를 받고 부회장실에 들어가자 장근식 부회장이 기자 일행을 맞이했다. 망백(望百·91세)을 넘긴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꿋꿋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고 기개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부회장실 안에 (당시) 국가보훈처가 6·25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지급한 베이지색 상의와 남색 넥타이 등으로 구성된 '영웅 제복' 액자였다.

 

그 위에는 지난 2022년 7월 12일 부산 동신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이 "참전용사분들은 제복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열심히 싸워 나라를 지켜 주셨기 때문에 제복을 제공해 주셨으면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성 어린 손편지 액자가 걸려 있었다. 당시 보훈처장에게 편지를 썼으며 이를 계기로 '영웅의 제복'은 생존 6·25 참전유공자 전원에게 무상으로 지급됐다.

 

1932년생으로 경상북도 청송 출신인 장 부회장은 1950년 중학교 4학년(당시 5년제 중학교)이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를 택했다.

 

장 부회장은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전쟁이 터졌고 12월 초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면서 "이후 대구보충대에서 일주일 간 훈련교육을 받고 바로 6사단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배치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기억에 남는 전투가 1951년 10월 중순에 중공군과 벌어진 금성천 전투다"면서 "비가 내리고 날도 추운 때 교통호에서 방어전투를 했다. 그 때 총을 맞은 병사가 '나 좀 살려달라'고 외친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전했다. 

 

장 부회장은 "이에 두려움 보단 적군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불타올랐고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전까지 중공군, 북한군과 여러 차례 공방전을 주고 받았다"면서 "전투 도중 오른쪽 다리에 적군의 총탄이 스쳐 지금까지도 흉터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장 부회장은 혁혁한 전공(戰功)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다. 

 

휴전협정을 한 이후 장 부회장은 3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해오다 중령으로 예편했고 보국훈장 삼일장도 수훈했다. 예편 이후 1980년대 초 경찰(총경 임명)로 전직해 강서 경찰서장, 서울시경 형사부장, 제주도 경찰청장 등 1997년까지 경찰에서 공직생활을 이어왔다.  

 

 

◆ 北, 정전협정 70년 넘어도 무력도발 현재진행형…"국민들 안보정신 무장돼야"

 

이와 같이 적들의 불법적 침략에 맞서 평화를 수호한 호국 영웅들의 피와 땀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그에 마땅히 상응하는 처우가 다소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가보훈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참전유공자의 혜택을 살펴보면 국·공립공원 등 이용료 감면, 보훈‧위탁병원 진료 시 진료비 90% 감면, 안장 지원 등이 제공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참전명예수당은 전년(39만원)보다 3만원 인상된 월 42만원으로 오늘날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 부회장은 "저 역시 이 점에 대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지급하는 참전 명예수당도 제각기 다르다"면서 "6.25 참전자는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이다. 현재 남아있는 생존자가 3만6천명 정도에 달하는데 적절한 수당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올해는 정전협정 71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럼에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북한은 대남(對南) 핵위협, 탄도미사일 무력시위 등을 잇따라 감행하며 적대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는 결국 안보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엄중해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국내 대북 단체들의 전단 살포에 맞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지난달 26일 대남 풍선 살포를 예고한 뒤 28일 밤부터 오물을 실은 풍선 260여 개를 남쪽으로 날려 보냈다. 자칫 화학물질 등 위험한 성분을 실어 보낼 수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이처럼 장 부회장은 최근의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국민들이 올바른 안보관 확립과 안보정신이 무장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장 부회장은 "안보의 가장 핵심은 유비무환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대적관 확립 및 튼튼한 안보정신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만약 전쟁이 발발했을 때 상황에 맞는 행동요령 등을 국민들이 인지하게 끔 철저한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보정신이 해이해지면 안보에 빈틈이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 그만큼 6.25 전쟁의 가슴 아픈 역사를 알아야 제2의 6.25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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