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국 전력 산업의 근간인 한국전력공사(KEPCO, 한전)가 전례 없는 경영 위기에 직면하며,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구축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약 206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부채와 28조 원에 육박하는 누적 적자는 한전의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위기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국민 경제와 물가 안정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전기요금 현실화가 장기간 지연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원가 이하로 전력을 공급하는 '역마진' 구조가 심화되면서, 한전이 짊어진 막대한 재정 압박은 자체적인 자구 노력(과거 삼성동 부지 매각 등)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고, 단순한 재무 개선을 넘어선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유가 하락이 한시적인 여유는 있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위기가 상존할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2001년 전력 산업 구조 개편 이후 23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된 현행 전력 시장 시스템이 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전이 주도하는 중앙 집중식 전력망 시스템은 빠르게 진행되는 분산 전원 환경과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부채 증가와 필수적인 투자 지연을 야기하고 결국 미래 전력망 구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에 한전은 제1차 장기 배전계획 확정을 통해 전력 생산과 소비가 중앙 집중식에서 분산되는 미래 전력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안전 최우선 경영과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지원을 핵심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며 국민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편, 정부는 한전의 재정 적자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하면서도,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물가 안정을 고려해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극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정치 요금'이라는 비판을 낳으며 한전의 재정 정상화를 더디게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정부가 탈탄소 전환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국가적 목표로 설정한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해야 할 한전의 송전망 확충 속도가 정부의 정책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는 괴리가 발생하며 양측 간의 긴장은 깊어지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 재생에너지 계통 접속 문제를 언급하며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한전이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정책의 핵심 주체로서 그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거대한 과제를 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한전 자회사의 구조조정 계획까지 포함하고 있어, 향후 노조와의 첨예한 갈등 또한 예견되는 바, 정부의 명확한 정책 방향과 강력한 추진력은 물론 이해관계자들의 지혜로운 사회적 합의 도출이 절실한 시점이다.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학계, 환경단체, 관련 에너지 업계는 한전의 재정 위기와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 방안을 모색 중이다.
최근 25개 산업·학계·시민단체가 참여하여 발족된 '한국재생에너지단체총연합회'는 정부에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과 함께, 불필요한 규제 완화, 안정적인 전력망 연계, 그리고 대규모 자본을 가진 한전이 시장을 독식하지 않도록 공정한 시장 참여 기회를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한다.
한전이 짊어진 막대한 부채와 정부가 추구하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복잡한 방정식의 해답은 결국 국민들이 안정적인 에너지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학계는 시스템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환경단체는 지속 가능성과 민주적인 전환을, 그리고 에너지 업계는 성장 동력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고려를 넘어선 장기적인 안목과 과감한 실행력, 그리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위기 속 한전의 선택과 정부의 지원이 한국전력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