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기후위기 대응이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면서, 한국 사회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성, 사회적 갈등, 그리고 노동자 희생 문제를 해결하고 전력의 공공성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공공재생에너지법(안)’의 제정 논의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개최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공재생에너지법 국회토론회’에서는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의 90% 이상을 점하는 민간 중심의 구조를 혁파하고,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그리고 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등 공공 부문이 재생에너지 발전의 주체가 되어 개발과 소유, 운영을 이끌어야 한다는 법안의 핵심 당위성이 강조됐다.
이 법안은 단순히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에너지 이익을 재벌이나 해외 자본이 아닌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누리게 하고, 화석연료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토론회에서는 현행 에너지 전환 방식은 재생에너지 이익이 소수 민간에 집중되면서 공공성이 훼손되고, 수익성만을 앞세운 민간사업 추진으로 환경 파괴와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유발하며 사회적 비용을 키우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석탄발전소 등의 폐쇄 시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여 있음에도 정부나 기업은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규 발전소 민자 유치와 해외 자본의 해상풍력 시장 장악을 통해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우회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공공재생에너지법은 이러한 민영화 흐름을 저지하고, 공공이 주도하는 빠르고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확대(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이익의 공평한 분배(에너지 공공성 확보), 그리고 노동자 및 지역사회의 피해 최소화(정의로운 전환)라는 세 가지 핵심 목표를 법에 담아 해결하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법안은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중 공공 부문이 소유 및 운영하는 비율을 2035년부터 50%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혁신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핵심 조항인 ‘정의로운 전환 의무’는 석탄발전소 등의 화석연료 발전 산업 종사자가 공공재생에너지 산업(전력 생산, 시설 설치·정비 등)으로 우선 고용될 수 있도록 국가와 공공기관의 책임을 명시했다.
또한 재생에너지 자원 이용에 따른 부담금 제도를 도입하여 마련된 재원을 국민 복지 증진과 정의로운 전환 지원에 투입하도록 하여, 에너지 전환의 혜택이 사회 전반으로 환원되도록 설계했다.
법안은 이 외에도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15년 단위의 국가 계획 수립, 국무총리 소속 ‘공공재생에너지위원회’ 설치, 그리고 주민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는 발전 지구 지정 근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관련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전력연맹)의 노유근 정책실장은 “전력산업 전 주기를 경험해 온 노동자들이야말로 공공성이 약화될 때의 위험을 가장 정확하게 체감하는 집단”임을 강조하며, “에너지 전환이 소수 민간 자본의 이익 확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노동자가 희생되는 불의한 전환이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점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현재 법안이 ‘발전(發電)’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며,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될수록 훨씬 중요해지는 ‘계통 안정성, 송전망 확충, 출력 조정력, 예비력 확보, 발전정비, 전력시장 운영’ 등 전력 시스템 전반의 공공적 역할 확립이 핵심“임을 역설했다.
이태성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 지부장과 공공노련 문상진 한국남동발전노조 사무처장은 ”수많은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재의 전환 논의가 노동자의 실질적인 생존권 보장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발전정비 등 협력업체 노동자의 고용 승계와 안정 문제를 강조하며, 법안에 명시된 우선 고용 의무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해고 없는 총고용 보장'이라는 원칙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이행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상진 사무처장 역시 ”발전 공기업의 공공성 회복과 함께, 노동자들이 전환의 주체로 참여하고 그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공공재생에너지법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려면 국가 기반 전원을 어느 범위까지 공공이 책임져야 하는지를 정량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주장이 나왔다.
이는 계통 안정, 가격 안정 같은 핵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 발전 필요량'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법에 명확히 삽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공재생에너지법은 화석연료 시대의 ‘낡은 공공성’을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전력 시스템 전반의 ‘새로운 공공성’으로 재정의하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되며, 앞으로 국회에서 노동계가 제시한 구체적인 시스템 공공성 강화 요구가 법안에 어떻게 통합될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