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국내 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편입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의 정책 의지와 산업 현장의 우려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건물 부문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병기로 히트펌프 보급을 낙점했으나, 정작 이를 현장에 적용해야 할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책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5월 8일로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를 포함한 국내 15개 관련 단체는 기계설비건설회관에서 ‘공기열 히트펌프 관련 법안 공동대응 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업계 대표들은 국회에서 발의된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이용합리화법 개정안이 국내 기후 조건과 산업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처사라는 점에 뜻을 같이하고 공동 대응을 결의했다.
이들은 공기열 히트펌프가 특정 조건에서 과도한 전력을 소비하여 오히려 국가 전체의 전력 부하를 가중시키고 탄소중립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법안 통과 시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이 형성되어, 수십 년간 국내 난방 시장을 지탱해온 중소 시공·설계업체와 보일러 제조업체들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감을 표명했다.
이러한 반대 기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2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공기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원에 전격, 포함하고 보급 확대를 통해 건물 부문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양대 축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 가속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2038년까지 원전 28.4GW 체제를 유지함과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136GW로 대폭 확충하여 무탄소 전원 비중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거대한 계획의 일환으로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난방 방식을 전기 기반의 고효율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건물 부문의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정책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드러나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관련 유관 단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목표치에 대해 “현재 국내 보급 대수가 약 36만 대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향후 10년 내에 그 10배에 달하는 35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은 시장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과거 지열 히트펌프 보급 사례를 언급하며 “보조금이 지급될 때만 반짝 수요가 발생하고 지원이 끊기면 자율적인 시장 형성이 전혀 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재원 마련 대책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술적 한계에 따른 실효성 논란이다. 기상 전문가들과 에너지 기술진들은 한국의 특수한 기후 환경을 지목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50년 최대 61%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전망과 관련,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분야의 한 전문위원은 히트펌프의 성능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는 “공기열 히트펌프는 기온이 온화한 제주도나 남부 지방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급락하는 중북부 지역의 혹한기에는 에너지 효율(COP)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추운 날씨에 난방 부하가 급증할 때 오히려 효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술적 한계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효율이 저하된 상태에서 히트펌프를 무리하게 가동할 경우, 소비되는 전력량에 비해 얻어지는 열량이 적어 차라리 기존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것이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소비자들의 부담 가중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히트펌프 전용 요금제 신설 등을 통해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사용량 요금뿐만 아니라 히트펌프 가동을 위한 기본 전력 용량 증설에 따른 기본요금 인상분만 해도 매달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겨울철 난방비가 이미 70만 원에서 100만 원 이상 발생하는 추운 지역의 가구들이 전기 기반의 히트펌프를 도입했을 때, 가스나 기름보일러보다 경제적 우위는 현 체제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난방비 폭탄’을 우려하는 서민들을 설득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또한, 보급 이후의 사후관리(AS)망 부재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왔다. 기존 가스보일러의 경우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 서비스 점검에 10~20분이면 충분하지만, 냉매 계통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히트펌프는 수리 난도가 높고 한 번 출동 시 2~3시간 이상의 작업 시간이 소요된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 밀도가 낮은 강원도 산간 오지 등에 설치된 제품이 고장 났을 때, 기사 한 명이 하루에 한두 집밖에 방문하지 못하는 구조로는 서비스 센터를 유지할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러한 인프라 부족은 결국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지고 대기업들조차 기업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시장 안착에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결국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편입 문제는 수열이나 지열 등 기존 에너지 업계의 단순한 ‘밥그릇 싸움’을 넘어, 국가 에너지 믹스 전략의 실효성과 국민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느냐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