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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최저임금 인상 '홍역'···선의로 포장된 일자리 감소 정책

벼랑 내몰린 소상공인 부담 가중 물론 취약 계층 일자리도 직격탄 우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출발점···유권자 '표'를 위한 공약 피해자는 국민

 

【 청년일보 】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하락하면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노동공급이 줄어들고 임금은 적정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임금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노동공급이 증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1940년대 독일에서 나타난 일이다.

 

당시 경제학자 발터 오이켄은 원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임금이 최저생계비 이하로 낮으면 근로자들은 부족한 생계비를 벌기 위해 잔업을 하게 된다. 부녀자와 아동들도 일하게 된다. 이처럼 임금이 하락하는데도 늘어난 노동공급은 근로자들의 임금을 더욱 낮추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지금은 많은 나라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돼 있다. 물론 최저임금 수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높고 낮음이 있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은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노사간 협상에 의해 정해지는 임금 시스템에 국가가 법적 또는 제도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노동 착취를 방지하는 인권보장 차원에서 효과가 있다. 최저임금을 설정함으로써 고용주가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 등 상대적 약자를 착취하는 행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제가 없다면 고용주는 임금을 적게 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는 특히 노동 대가의 하락이라는 무한 악순환을 막아준다. 자본, 노동, 원료를 3대 축으로 굴러가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한 축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해 안정적인 노동의 수요공급을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8월 5일까지 그 다음 해에 시행될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최저임금법에 예시된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결정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 그리고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최저임금 결정에는 과반수인 14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의 소폭 인상이나 동결을 주장한다. 반면 근로자위원들은 10~20%의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사실상 이를 조정하는 것이 공익위원들인데, 그동안 정부의 '거수기'란 평가를 받아왔다. 한마디로 최저임금 결정에는 정부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소득 양극화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의 확대와 함께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 문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고용 축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두 개의 정책 목표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정책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는 가장 임금이 낮은 직군이나 직열도 연 300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문제는 근로자의 88% 정도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 그 중에서도 영세 중소기업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영상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규모가 더 작은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의 8720원보다 5.1% 인상된 9160원으로 결정됐다. 청와대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경영계와 노동계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노총은 저임금 근로자를 희망고문하고 우롱했다며 총파업까지 거론하고 있다. 경영계는 벼랑으로 내몰린 소상공인들은 고용 축소 밖에 길이 없다고 호소한다. 특히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5일 "인상률의 산출 근거와 법에 예시된 결정 기준, 사용자의 지불 능력 등 고려해야 할 사안에서 모두 벗어났다”면서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제성장률(4.0%)과 소비자물가 상승률(1.8%)을 더한 숫자에서 취업자 증가율(0.7%)을 빼 5.1%의 인상률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경영자총협회는 경제성장률, 소비자물가 상승률, 취업자 증가율을 고려해 결정한 것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이를 유독 올해 심의에서만 적용한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인상률 결정 방식에 따르자면 5년간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은 15.6%가 돼야 하지만 실제 로는 41.6%나 돼 과도하게 인상됐다는 것이다. 이 기간 중 누적 경제성장률은 11.9%,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 그리고 취업자 증가율 2.6%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극복 이후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을 전제로 해 이번 인상율 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망치로 확정치를 결정하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은 수치”라는 설명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근거도 없고 논리도 부족한 절충안임을 고백한 셈이다.

 

최저임금 결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지난 몇년 동안 노사 양쪽 모두 불만이 가득 쌓인 적도 없다. 그 출발점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임은 물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목표를 제시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파격적으로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실현 가능한 로드맵 제시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을 끌어올려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며 실현 가능한 정책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이 됐지만 일자리 정책 실패의 대표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표(票) 경쟁이 무리수를 둔 발단이었던 셈이다.

 

파격적인 공약을 지키자니 2018년 16.4%, 2019년 10.9%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후폭풍을 맞게 됐고, 여기에 코로나 19 사태까지 겹쳐 지난해와 올해 인상률은 각각 2.9%, 1.5%로 급락했다. 급등과 급락 다음은 어정쩡한 절충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5.1%로 결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은 소상공인과 근로자의 대립, 이른바 을(乙)과 을(乙)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특히 소상공인의 임금 지불 능력이 떨어져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율은 지난 2018년 15.5%, 2019년 16.5%로 계속 상승했다. 최저임금 미만율이란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근로자의 비율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이 더욱 힘들어지는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은 25.1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5번째로 높다. 경기침체, 조기퇴직, 취업준비생 증가 등은 자영업자 비중을 더욱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700만명에 이른다는 자영업자는 코로나 19에 따른 매출 감소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부채 역시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 245만6000명이 받아간 대출 규모가 831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은행이 자영업자 대출 통계를 모은 2012년 이후 최대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으로 취약 계층의 일자리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몇 년째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가 계속 줄어드는 것은 높아진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힘든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각각 15만9000개, 27만7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내년도 최저임금이 9000원대로 올라갈 경우 일자리 13만4000개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이 5% 인상될 경우 10만개의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고 한다. 선의로 포장된 일자리 감소 정책인 셈이다. 정부의 정책은 한 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힘들다. 나라의 미래까지 좌우한다. 유권자 표를 위해 남발하는 공약, 책임지지 않는 정책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국민일 수밖에 없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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