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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선출 권력' 내세워 위헌의 경계선 넘나드는 거대 여당의 입법 독재

예산안 비롯해 모든 법안 처리할 수 있는 의석 수,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
견제와 협의 없이 일방 독주···대통령 거부권과 헌재 위헌 소송도 기대 난망

 

【 청년일보 】 법(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다.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오는 사회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와 복지를 도모하기 위해 법은 필요충분조건이다.

 

법은 정의를 지향해야 하고, 합목적성과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안정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법을 믿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이 명확해야 하고, 쉽게 변경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실제로 시행돼야 하고, 일반인의 의식에 부합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0조는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입법권이 국회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국회는 헌법을 통해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만큼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입법활동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 기본권 보장, 국민 주권,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다. 국회가 입맛대로 법을 만들거나 고쳐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훼손하면 명백한 위헌(違憲)이 된다. 졸속 발의 및 심의를 통해 특정 정파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독재(獨裁)는 권력이 독점돼 있는 정치적 상태를 말한다. 다수의 지지 또는 선출된 권력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독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견제가 불가능하면 독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선출 권력에 대한 과도한 맹신은 독재의 출발점이다. 근현대의 독재는 대부분 선출 권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최근 거대 여당, 즉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재 논란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177석이지만 지난해 4·15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했다. 열린민주당과 정의당 등을 포함하면 범여권 의석은 190석에 달한다. 한 정당이 전체 의석의 5분의 3 이상을 확보한 만큼 강력한 입법권 행사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은 재적 의원 3분의 2가 필요한 헌법 개정을 빼면 예산안을 비롯한 모든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180석은 국회선진화법이 묶어둔 한계 상황도 무력화할 수 있다. 여야의 견해 차이가 커서 상임위원회 처리가 어려운 쟁점 법안도 180명이 서명하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 야당이 반대해도 어떤 법안이든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견제와 합의 정신이 사라지고 일방적인 독주로 국회가 운영되면 의회정치는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이 같은 우려는 21대 국회 시작부터 현실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차지하면서 원(院) 구성을 완료했다. 한 정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은 군사정권 시절인 1985년 12대 국회 이후 35년 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넘게 상임위원장은 의석 수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2004년 총선(열린우리당), 2008년 총선(한나라당), 2012년 총선(새누리당)에서도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얻은 정당이 나왔다. 하지만 한 정당이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한 적은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정당들은 제2당으로 밀려나면 항상 의석 수에 따른 배분을 주장해 관철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21대 국회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특히 관행상 야당이 차지했던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 자리마저 챙긴 것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장치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는 정당의 이 같은 행보는 자기모순이자 헌정사에 중대한 오점을 남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5.18 특별법에 역사왜곡 처벌을 신설하는 개정안, 그리고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이 법들에 대해 국가가 개인에게 닥치라고 하는 느낌의 '닥쳐법'이라고 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은 지난해 6월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전단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며 비난한 후 정부와 여당이 마련에 나선 것이다.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경제계의 반발을 무시하고 통과시킨 법안도 다수다.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이른바 '경제 3법'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이 우려해 왔던 해고자·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부동산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는 사회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와 복지를 도모하기 위한 법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또한 법이 지향해야 할 정의, 합목적성, 안정성을 무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7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그리고 전월세 신고제를 골자로 한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그러면서 국회법에 규정돼 있는 소위원회 심사보고, 축조 심사, 찬반 토론을 모두 생략했다. 8월에는 주택의 취득·보유·매매·증여와 관련된 세금을 대폭 올리는 세법 개정안도 단독으로 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 같은 입법 독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규제 대상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또는 문제 집단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일부의 잘못을 침소봉대하거나 선의의 다수를 외면한다. 적군과 아군으로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접근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에게는 몇 겹의 보호망을 둘러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일명 '윤미향 셀프 보호법'으로 불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금지하고 있다. 뒤늦게 철회됐지만 이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윤미향 의원은 물론 정의기억연대 같은 위안부 단체의 비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법적 처벌의 근거가 생길 뻔 했다. 윤미향 의원을 비판한 이용수 할머니까지 처벌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 언론중재법은 오보(誤報)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법의 본질을 바꿔 권력부패, 권력범죄, 권력남용 등 정권의 비리 보도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비판까지 무릅쓰며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재갈법', '언론징벌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입법 독재를 견제하는 수단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제도가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일은 없어 보인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임명 추천권자의 눈치를 보면 입법 독재에 면죄부만 줄 수 있다. 결국 국민이 나서야 된다는 얘기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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