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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분홍색 코끼리' 된 대장동 의혹···대선 이슈 빨아들이는 '블랙홀'

국민적 분노 감안해 與野 프레임 전쟁···'국민의힘 게이트' VS '설계자 이재명'
이재명 지사 스스로 '설계자' 밝혀···프레임·물타기 등 '가짜 미끼' 국민도 알아

 

【 청년일보 】 프레임(Frame)은 세상을 바라보는 '준거틀'이다.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봐야 할지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그래서 정치 세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미끼'를 던진다. 일단 프레임이 형성되면 유권자는 이를 통해 사안을 본다. 진실 여부를 가리는 것은 후순위로 밀려버린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유권자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해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정치권이 프레임 전쟁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프레임의 기본은 '네이밍'에서 출발한다. 복잡하지 않고 공분을 자아낼 수 있는 문제를 간결하고 명료한 네이밍을 통해 사회에 던지는 것이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 게이트', 국민의힘은 '설계자 이재명'으로 프레임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곽상도 의원 아들의 화천대유 퇴직금 논란을 연결고리로 삼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사안을 사전에 알고도 모르는 척 했다는 주장 역시 펴고 있다. 그러면서 "화천대유가 누구 것이냐"고 외치기 전에 자체 조사부터 하라는 주문을 외고 있다.

 

지난 4·7 재보선 당시 결정적 영향을 미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프레임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캠프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곽상도 의원의 탈당으로 국민의힘 전매 특허인 '꼬리 자르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곽상도 의원이 화천대유와 관련해 무슨 일을 했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프레임이 통하면 '몸통'은 국민의힘이 되는 것이다.

 

프레임을 걷어내고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단순하다. 공권력으로 대장동 주민의 땅을 싼값에 수용해 비싸게 판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번 돈을 공공이 아닌 화천대유 등 민간 사업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가져갔다. 싼값에 수의계약한 땅으로 수천억원대의 추가 이익도 보장됐다.

 

한마디로 본질은 단군 이래 최대의 특혜 사업이 되도록 설계한 이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한 천문학적 개발이익은 누구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는가 하는 것이다. 

 

도시개발법에 의하면 당초 대장동 개발사업은 지정권자인 성남시 또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게 했다면 개발에 따른 이익은 고스란히 성남시민에게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성남시는 민간·공영 공동사업이란 명분으로 사업 시행사인 '성남의뜰'을 급조, 민간 사업자들이 끼어들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와 5호 소유주들은 지난 2009년부터 대장동 땅 3분의 1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불로소득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했지만 땅을 선점한 민간 사업자들이 처음부터 개발이익을 독식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성남시나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전면에 나서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이득은 무엇일까. 만일 공공이 민간과 결탁해 업무상 배임과 같은 범죄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성남의뜰이라는 시행사를 앞세워 꼬리 자르기에 더 없이 유리할 수 있다. 성남의뜰은 위험을 차단하는 '외피'로 설계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50%의 지분을 갖되 잔여수익 배당에는 참가하지 않는 이른바 비(非) 참가적 우선주를 선택했다. 정상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주주라면 확정이익을 배당받고, 수익이 좋을 경우에 대비해 보통주와 같이 참여해 분배받는 참가적 우선주를 발행받아야 했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비정상적 우선주 발행의 아이디어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와 제안되고 관철됐을까. 그 과정에서 내부의 반발이나 지적은 없었을까.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어느 정도 의사결정에 관여했는가. 이것이 바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이다. 곽상도 의원 아들의 퇴직금 논란은 시선을 돌리기 위한 '곁가지'이자 프레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도시개발 사업의 가장 어려운 관문은 토지 확보다. 대장동 개발사업에서는 공공의 힘으로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했다. 각종 인허가 역시 성남시가 해결했다. 남판교로 불리는 뛰어난 입지 덕분에 분양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토지 확보, 인허가, 분양 등 도시개발 사업의 3대 위험을 모두 피해 간 셈이다.

 

이재명 경기지사 측은 '높은 리스크'를 주장하지만 정황은 '땅 짚고 헤엄치기'에 가깝다. 공공이 위험을 없애주고, 민간 사업자가 이익을 챙긴 설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4일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설계자'임을 밝힌 바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역임한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유동규 전 사장은) 퇴직했고··· 사실 이 설계는 제가 한 겁니다. 유동규 전 사장이 실무자로 당시에 성남도시개발공사 담당 임원이었죠"라고 한 것이다. 이어 "제가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렇게 설계해라. 나중에 혹시 먹튀할 수가 있으니까'··· 결국 920억원 정도 추산되는 사업을 그들이 하기로 해서 인가조건을 바꿨고요”라고 부연했다.

 

이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따른 수익 배분 구조를 이재명 경기지사가 구체적으로 보고 받고 지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업에 뛰어든 민간 사업자들은 3억5000만원을 투자해 배당금과 분양수익으로 6300억원 이상을 챙겨갔다.  

 

설계 의혹은 대장동 개발사업의 '축소판'이라는 2013년 성남 위례신도시 개발사업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공모 마감 하루 만에 민간 사업자가 선정되고, 화천대유와 같은 자산관리회사 역할을 한 위례자산관리는 공고 사흘 후에 설립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보통주 5만주에 2억5000만원을 출자해 150억원이 넘는 돈을 배당받았다고 하는데, 그 돈이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또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장동 개발사업의 실무자라고 지칭한 유동규 전 사장,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이 위례신도시 개발사업에 관련된 정황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특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게이트' 수준으로 비화됐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특검과 국정조사를 외면한 채 검경수사만 고집하고 있다. 같은 당의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촉구한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 설치 역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화천대유에서 이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통보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유동규 전 사장은 아예 수사 대상에서 빠져 있다.

 

검찰 역시 공정한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사건을 담당할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수장들이 모두 친정부 인사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 및 수사관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수처는 아예 논외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그리고 대한변호사협회가 특별검사 임명과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의혹 해소를 위해서는 관련자들의 '입'이 아니라 신속한 계좌추적 등 돈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참고인으로 불러 적당히 시간을 끌고, 결국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주문하면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분홍색 코끼리가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내년 대선까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각종 프레임을 동원해 '물타기'를 하더라도 그것이 '가짜 미끼'인 것을 국민은 안다. 좋은 정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이 같은 의혹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국민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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