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청년일보가 창간 6주년을 맞았습니다. 6년 전, 코로나19는 삶의 방식과 일상의 속도를 근본부터 바꿔놓았습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혼란의 시간을 지나, 우리는 어느새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익숙함 뒤에는 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하고, 소비하고, 배우고, 돌보는 방식까지 모두 달라졌습니다. 이번 창간 기획은 지난 6년을 되짚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6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취업, 집값, 전세사기, 청년지원, 금융, 식생활, 의료와 교육, 소상공인, 유통·택배, 청소년 게임 등 생활과 밀접한 11개 분야를 11명의 기자가 심층 진단합니다.
이 기획은 기록이자 통찰이며, 동시에 질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살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11편의 기획 보도를 통해 그 답을 함께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코로나19 팬데믹은 소비의 기본을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직접 가서 보고 사는 것'이 기본이었다면, 이제는 '배송이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지'가 구매 결정을 좌우한다.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이 중심이던 시절은 뒤로 밀려났고, 온라인 쇼핑과 택배는 일상의 표준이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일상을 회복한 후 "이제는 택배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단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팬데믹이 종료된 2023년 이후에도 국내 택배 물동량은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
![연도별 국내 연간 택배 물량(단위: 억 건) [사진=청년일보]](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625/art_17505178198536_be5ba6.jpg)
국토교통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연간 택배 물량은 약 59억6천만 건으로 60억 건에 육박했다. 이는 2023년 대비 15.6% 증가한 수치이며,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33억7천만 건)과 비교해도 약 77% 늘어난 규모다.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건수도 2020년 65.1건에서 2024년 115.2건으로 60% 이상 급증했다. 이는 단순한 회복이 아닌, 유통 방식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 '언제 사느냐'보다 '언제 도착하느냐' 시대
이제 소비자는 단순한 ‘구매’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배송이 곧 소비’인 시대가 본격화한 것이다.
당일배송, 새벽배송, 3시간 이내 퀵배송이 새로운 소비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대형 유통 플랫폼들은 배송 전쟁에 돌입했다. '언제 살까'보다 '언제 도착하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다.
이 같은 흐름에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국내 시장 진출도 영향을 미쳤다. 초저가 상품 확산과 빈번한 구매가 맞물리며 배송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배송 속도 경쟁 또한 이커머스 전반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유통과 물류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소비지와 가까운 도심형 물류센터(MFC)가 확산되고, 냉장·냉동 유통망은 콜드체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AI 수요 예측, 자동 피킹, 무인 배송 기술도 빠르게 도입되는 중이다.
■ 속도의 이면, 노동자들의 '숨고르기'는 가능한가
이처럼 편리해진 소비 생활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특히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는 팬데믹 시기, 극단으로 치달았다.
![줄지어 서있는 택배 차량 [사진=연합뉴스]](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625/art_17505968002867_e0f367.jpg)
실제로 2020~2021년 사이 과로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 노동자는 20명이 넘는다. 분류작업의 외주화, 야간배송 확대, 특수고용직의 사각지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 제정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루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이 법의 목적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 및 소비자의 권익을 증진함으로써 국민의 삶을 질을 향상하고 국민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규정’이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 환경 부담, 중소상인 소외…누가 감당하고 있나
끝없는 속도 경쟁은 환경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이중·삼중 포장, 물류 이동 거리 증가, 탄소배출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쿠팡, 우체국, 마켓컬리 등 일부 업체들은 친환경 포장 전환과 전기배송차량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또한 대형 플랫폼 중심의 물류망 고도화는 중소 유통망과 지역 상권을 압박하고 있다. 대량 배송과 인공지능 예측 기반 재고 관리가 가능한 플랫폼과 달리, 소규모 유통점은 대응이 어렵다. 택배는 모든 것을 연결하지만, 그 연결망에서 밀려나는 존재들도 생긴다.
■ 더 빠르게? 이제는 ‘더 지속 가능하게’
택배업에 11년째 종사하고 있는 A 씨는 “택배는 저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정의한다.
그는 “저도 처음에는 과일이나 육류 같은 것은 집 앞 슈퍼마켓에서 사곤 했는데 이제는 편리함 때문에 온라인을 이용하고 있다”며 “택배일을 하는 나도 이러할진데, 다른 사람이라고 안 그러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모두가 지금처럼 ‘빠른 배송’을 원하고, 2~3일 걸리는 배송은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택배기사들의 과로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편리함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며 “하지만 택배 기사들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중요하다. 다들 일하는 만큼 돈 버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택배기사들에게 강제적인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택배대리점을 운영하는 B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택배 기사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물건 개수 만큼 돈을 버는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돼 쉬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금 늦어도 이해해 주는 문화, 정 급한 물건은 가까운 슈퍼마켓 등에서 구매할 수 있어야 지금처럼 빠른 배송도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물류 혁신이 ‘속도와 편의’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지속가능성과 균형’이 관건이다.
특히 ESG 관점에서의 포장 간소화, 친환경 배송, 노동 강도 완화, 지역 상생 등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야 하는 시점이다.
■ 다음 6년, 우리는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택배 물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편리해졌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의 소비 방식, 유통 구조, 그리고 도시의 작동 원리까지 전반적인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온라인 주문 한 번이 물류센터의 분류 시스템을 거쳐 도심의 골목길까지 도달하는 동안, 수많은 기술과 인력, 에너지와 시간이 투입된다.
택배는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그 흐름이 멈추지 않는 한, 도시의 리듬도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물건을 고르는 방식, 기다리는 감각, 포장을 버리는 순간까지 모두 이 거대한 흐름과 연결돼 있다.
다가올 6년, 물류는 단지 더 빠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더 똑똑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드론이나 로봇 같은 기술적 혁신만이 해답은 아니다. 친환경 포장재, 공정한 노동 조건,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는 스마트 배달 경로 설계까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소비와 배송의 관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내가 주문한 물건이 언제 오느냐'를 넘어서, '어떻게 오고, 누가 전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바뀌는가'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다. 그리고 이 진화의 방향은 결국 소비자인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빠름과 편리함만을 좇을 것인지, 그 이면을 함께 고려할 것인지에 따라, 미래의 물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도착할 것이다.
【 청년일보=박윤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