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대한민국 경제의 훈풍에 봄꽃보다 반도체가 먼저 개화한 듯 하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앞세운 반도체 수출은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한편 국내 주요 상장사들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장밋빛 청사진으로 가득하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252억 달러를 기록했다. AI 투자 확대로 인한 수요 증가와 이에 따른 메모리 가격 급등에 월 기준 전(全)기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3개월 연속 200억 달러 이상 수출을 이어갔다. 지난해 10월 157억 달러였던 반도체 수출 규모는 11월 173억 달러, 12월 208억 달러, 올해 1월 205억 달러, 2월 252억 달러로 매월 역대급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이달 초 격화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확대도 반도체 업계를 비껴갔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76억 달러로 전년 동기 28억 달러 대비 175.9%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 비중은 35.3%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4%p 증가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도 막을 수 없는 파죽지세의 성장세다.
반도체 수출 비중이 전체의 35%를 넘어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머지 65%를 차지하는 우리 산업의 주축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소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수출 성적표는 만년 우등생인 반도체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만, 이 장식을 걷어낸 나머지 학생들의 성적은 초라한 셈이다.
실제로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 현장의 체감 온도는 영하권이다. 고금리와 고물가의 파고를 정면으로 맞고 있는 건설업계가 대표적이다. 반도체 공장이 24시간 가동될 때, 지방의 건설 현장들은 멈춰선 타워크레인과 쌓여가는 미분양 물량에 신음하고 있다. 자잿 가격 상승과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위험은 건설사를 넘어 건자재, 인테리어 등 수많은 전후방 연관 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도 산업별로 비대칭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부피가 작고 단가가 높아 주로 항공편을 이용하는 반도체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권에서 한발 비껴나 있다. 이에 비해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자동차, 정유·석유화학, 철강 기업들은 폭등한 해상 운임과 납기 지연 등 시련을 겪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반도체 쏠림 현상이 정책적 안일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라는 거대한 우산이 비를 막아주고 있을 때, 우산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다른 산업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체질 개선과 자금 지원의 골든타임을 확보해야 한다.
산업 정책은 '가장 잘나가는 곳'을 띄우는 것만큼이나 '가장 아픈 곳'을 살피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반도체만으로 굴러가는 경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계 전반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직면하는 냉정함이다. 3월의 봄기운이 반도체 공장뿐만 아니라 차갑게 식어가는 전국 각지의 산업 현장에도 스며들 수 있도록, 보다 세밀하고 균형 잡힌 정책적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 청년일보=강필수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