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일본 정부가 오는 15일 전후 80년을 맞아 총리 담화를 내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당초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조망하는 메시지를 개인 자격으로 준비했지만, 여당 패배 이후 당내 보수파의 반발에 밀려 이를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이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전후 80년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내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집권 자민당 내 보수파 반발 등을 고려해 종전일인 8월 15일과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에는 발표하지 않을 방침이다.

전후 담화는 일본 역대 총리들이 과거사를 성찰하고 대외 메시지를 발신하는 중요한 외교·역사 이벤트로 자리매김해 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1995년 전후 50년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처음 공식화했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2005년 전후 60년 담화에서 이를 계승했다.

반면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반복적으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해 왔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하면서 “사죄를 후대에 계속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자민당 내 보수파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이후 일본 정부는 추가 담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도 비교적 온건한 역사 인식을 지닌 인물로, 당초 전문가 자문기관을 설치해 전쟁 책임과 경위를 객관적으로 검증한 뒤 총리 개인 자격의 메시지를 발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당내 보수세력이 결집하면서 이 총리에 대한 퇴진 압박이 커졌고, 이로 인해 역사 메시지 계획도 일단 보류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보도에서 "정권 내에서는 총리가 역사 관련 메시지를 발표할 경우, 정권 반대파가 이를 빌미로 퇴진 공세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고 전했다.

이시바 총리 역시 현 시점에서는 메시지 발표가 정권 운용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전후 80년이 되는 올해 종전일에는 과거사에 대한 총리 담화는 물론, 개인 메시지도 발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산케이신문도 "이시바 총리는 오는 15일에는 메시지를 내지 않기로 최종 결심했다"고 보도하면서, 다만 9월 2일 등 별도의 시점에 발표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총리직을 유지한다면, 정국 안정 이후 가을 무렵 역사 메시지를 재추진할 여지를 남겨뒀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정권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담화 발표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