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오늘날의 청년에게 사치가 됐다. 청년이 마주한 일자리(Work)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삶(Life)의 기본 조건인 주거 공간(House)은 만질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이 어른거린다. 과거의 청년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워라밸을 추구했다면, 이제 청년은 생존을 고민한다.
취업 관문 앞에서 ‘쉬었음’을 강요당한 청년들, 급여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와 대출 이자로 쏟아부으며 독립을 미루는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수익성과 리스크를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셈법의 프로젝트로 변모했다.
이에 청년일보는 일(Work)과 삶(Life), 그리고 집(House)이 맞물린 교착 상태를 ‘워라하밸(Work·Life·House·Balance)’이라는 확장된 틀로 기록한다. 이를 통해 통계의 숫자 뒤에 숨어있던 청년들의 ‘조건부 포기’와 ‘강요된 선택’을 조명한다. 구직 현장에서 내뱉는 한숨부터 경력 단절의 공포, 그리고 부동산 계약서 앞에서 표류하는 미래 설계까지, 파편화된 청년 담론을 하나로 엮었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혼인 건수가 큰 폭으로 반등했지만, 청년들의 체감 온도는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2024년 기준 혼인 건수는 전년 대비 15%가량 증가하며 1996년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감소 일변도' 흐름에 제동이 걸린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 수치가 곧바로 결혼 환경의 개선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증가 폭만 놓고 보면 반등이지만, 추세 자체가 전환됐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실제 관련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미뤄졌던 혼인이 재개된 기저효과와 30대 초반 인구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9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4년 혼인 건수는 22만2천건으로 전년(19만3천건)보다 2만9천건 늘었다. 1년새 15%가량 증가했음에도 지난 2019년과 비교하면 이는 1만7천건가량 적은 수준이다.
혼인 건수는 2019년 23만9천건에서 2020년 21만3천건, 2021년 19만3천건, 2022년 19만2천건, 2023년 19만3천건으로 감소 흐름을 이어왔다. 4년 사이 약 4만6천건(약 19%) 줄어든 셈이다. 최근 증가분이 직전 수년간의 누적 감소 폭을 모두 만회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2024년 기준 통계 수치의 반등은 '추세 반전'이라기보다 코로나19 시기 지연됐던 수요가 일부 회복된 결과에 가깝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평균 초혼 연령도 앞당겨지지 않았다. 남성은 33.9세, 여성은 31.6세로 오히려 10년 전보다 각각 1.4세, 1.7세 늦어졌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6~7년가량 뒤로 밀린 수치다. 아울러 결혼의 중심 연령대는 사실상 30대 초반으로 굳어졌다. 이는 결혼이 빨라졌다기보다, 준비 기간이 길어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고용과 소득, 주거 여건은 여전히 결혼을 '선택'이 아닌 '조건의 문제'로 만든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 청년의 월평균 소득은 약 266만원이다. 청년 평균 부채는 1천637만원으로 집계됐고, 상당 부분이 주택 관련 대출이다.
또한, 독립 청년의 절반가량(전세 23.8%·월세 23.8%)은 전·월세에 거주했으며, 월평균 주거비는 40만원 안팎으로 소득의 10%를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대출이 있을 경우 원리금 상환과 생활비를 제외하면 실질 가처분소득은 크게 줄어든다. 결혼과 출산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맞벌이나 추가 소득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배경이다.
실제 미혼 청년 일각에서는 이같은 인식으로 인해 결혼을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30대 청년은 "전셋값과 대출 이자를 감당하면서 아이 계획까지 세우기는 쉽지 않다"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결혼을 결정하기엔 불안 요소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은 "최소한 몇 년 뒤 소득과 주거가 예측 가능해야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이렇듯 통계상 혼인 건수는 반등했지만, 청년들이 제시하는 결혼의 전제 조건은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까다로워졌다. 결혼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생애 단계'가 아니라, 고용 안정성과 소득 지속성, 감당 가능한 주거비를 종합적으로 계산한 뒤에야 가능한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
숫자는 회복됐지만 기반은 달라지지 않았다. 청년들이 "하고 싶지만 못 한다"고 말하는 한, 혼인 증가를 구조적 반전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에 결혼 이후의 지원을 넘어, 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고용·소득·주거 기반을 함께 다루지 않는다면 혼인 통계의 반등은 일시적 회복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관련 통계가 반등을 보이던 당시 "이 같은 반등세를 구조적 변화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고용·주거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