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오늘날의 청년에게 사치가 됐다. 청년이 마주한 일자리(Work)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삶(Life)의 기본 조건인 주거 공간(House)은 만질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이 어른거린다. 과거의 청년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워라밸을 추구했다면, 이제 청년은 생존을 고민한다.
취업 관문 앞에서 ‘쉬었음’을 강요당한 청년들, 급여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와 대출 이자로 쏟아부으며 독립을 미루는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수익성과 리스크를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셈법의 프로젝트로 변모했다.
이에 청년일보는 일(Work)과 삶(Life), 그리고 집(House)이 맞물린 교착 상태를 ‘워라하밸(Work·Life·House·Balance)’이라는 확장된 틀로 기록한다. 이를 통해 통계의 숫자 뒤에 숨어있던 청년들의 ‘조건부 포기’와 ‘강요된 선택’을 조명한다. 구직 현장에서 내뱉는 한숨부터 경력 단절의 공포, 그리고 부동산 계약서 앞에서 표류하는 미래 설계까지, 파편화된 청년 담론을 하나로 엮었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거비용과 공급 물량 급감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청년층들의 자가 진입 장벽이 어느 때보다 견고해지고 있다.
이러한 주거 불안은 결국 가처분 소득을 잠식하며 자칫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 주기 전반의 설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일각에선 청년들의 실질적 주거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9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의 39세 이하 무주택 가구는 약 361만 가구로, 지난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무주택 청년 가구는 2022년 200만 가구를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서울은 99만 2천856가구로 집계됐다.
반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청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에서 자가를 보유한 39세 이하 청년 가구는 128만 8천440가구로,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특히 주거비 부담이 큰 수도권과 서울은 각각 66만 가구, 21만 가구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 서울의 청년 주택 소유율은 17.9%에 불과했고, 결국 청년 5명 중 4명 이상이 무주택자인 셈이다. 이는 청년층에게 자가 진입 장벽이 견고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무주택 청년들의 주거 비용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월세 지출은 21만4천원으로 통계 개편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29세 이하 사회초년생 가구는 소비지출의 20.7%, 즉 소득의 5분의 1을 주거비에 쏟아붓고 있어 자산 형성의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상가상 이들을 받아줄 주택 공급마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민간 아파트 신규 분양은 2016년 이후 최저 수준인 11만6천213세대로를 기록했다. 서울은 전년 대비 절반 이상(55.0%) 급감한 3천907세대에 그쳤다.
서울 주택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5월 처음으로 10억원 선을 넘어선 데 이어, 12월에는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5억원을 돌파했다. 결국 집값 상승과 공급 부족이라는 높은 문턱 앞에서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은 요원해지고 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해 전국 주택 건설 인허가 물량이 37만9천834호로 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허가는 통상 3~5년 뒤의 실제 공급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점에서, 일각에선 이번 수치가 주거 수급 불안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위험 신호로 해석한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수도권에 135만 호 이상을 착공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급감한 인허가 물량을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집값 상승과 주거 공급 가뭄 현상이 청년들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주거비 부담의 경우 사회초년생이 미래를 위해 쌓아야 할 최소한의 자산 형성 기회마저 앗아가며, 결혼이나 출산도 기약 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선우(34) 씨는 "높은 월세, 공과금 등이 나가면 저축은커녕 한 달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조차 버거운 실정"이라면서 "지금 같은 속도로 돈을 모은다면 '내 집 마련'이라는 단어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청년센터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근로소득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면서 "이러한 막막함에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는 수도권의 폭등한 집값을 잡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지방 광역시의 주거난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수도권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청년 주거 사다리를 어떻게 복원할지에 대한 고민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규희 열고닫기 대표는 "보증금이나 고금리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초기 소득으로는 안정적인 주거 진입이 어려운 구조가 핵심"이라면서 "자산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시장 가격을 감당해야 하는 사회초년생들은 소득 상승보다 빠른 주거비 상승 속도 때문에 결국 '최소 비용' 선택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저주거기준에 가까운 노후 원룸이나 고시원 생활이 주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어 "협소한 공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심리적 불안정을 야기해 개인의 자존감을 위축시킨다"면서 "장기 거주를 상상하기 힘든 환경은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각의 지속이 청년들의 도전 의지를 꺾고 커리어 확장이나 관계 형성 등 미래 기대치 자체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원 대표는 "이제 주거 정책은 공급 물량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청년이 '잠만 자는 최소 공간'이 아니라, 휴식과 자기계발, 관계 형성이 가능한 최소한의 여유 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