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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4주년···항일 독립운동사 '재조명'

김규식, 1919년 파리강화회의 참가···한국 독립 정당성 주장
황기환 지사, 유럽 오가며 외교활동···100년 만에 유해 봉환
백범 김구, 1931년 한인애국단 창설···이봉창·윤봉길 의사 배출

 

【청년일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4주년을 맞이한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은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민족 공동체 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만든 국가 기념일이다.

 

9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인 오는 11일을 맞아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유품 공개 행사를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인 가운데 조국 독립을 위해 세계를 누빈 주요 인물들을 조명해본다.

 

임시정부는 세계열강들에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행보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파리강화회의'가 첫 걸음이었다.

 

먼저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거쳐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1881~1950)을 파리강화회의에 민족 대표로 파견해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고,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설치해 미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이어 프랑스, 미국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제침략과 통치 실상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해인 10월, 프랑스 인권옹호회에 참석해 한국 독립문제를 보고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이었던 황기환 지사 역시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1886년 4월 4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황 지사는 19살이던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립협회에서 활동했으며,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지원병으로 입대, 소대장으로 중상자 구호를 담당했다. 

 

1918년 11월, 1차 종전 후 유럽에 있다가 김규식의 제안으로 1919년 6월 파리위원부에서 서기장을 맡아 '통신전(通信箋)'을 발행해 유럽 내 각 언론기관과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 및 저명인사 등에게 송부함으로써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192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런던위원부 위원에 임명돼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외교활동을 펼쳤으며, 10월에는 영국의 언론인 맥켄지와 긴밀히 협의해 '대영제국 한국친우회' 결성을 주도하고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연설을 통해 영국인들의 지지와 성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23년 4월 후손없이 미국 뉴욕에서 향년 37세의 나이로 심장병으로 서거했다. 

 

이에 정부는 황 지사가 임시정부 외교관으로서 독립운동을 펼친 점을 고려,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황 지사의 유해는 9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순국 100년 만에 오는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유해는 분향과 건국훈장 헌정 등 영접 행사 후 대전현충원으로 봉송되며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된다.

 

그 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발 벗고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공적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석인 백범 김구 선생이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안창호, 여운형 등과 함께 지도자 출신 중 최순위권에 손꼽히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구 선생은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 '한인애국단'을 조직했으며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휘했다. 첫 번째 임무로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에 의한 일본 국왕 암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끝난다.

 

이후 4월 29일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과 상하이 점령 전승축하식에 윤봉길은 폭탄투척으로 일본군 장성, 고관 등 수뇌부들을 살상하며 일제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이같은 의거로 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여기에 독립운동의 구심체로서 중국 정부와 함께 항일 연합전선을 펼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며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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