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환경부가 지난 9일 국내 주요 히트펌프 제조사들과 비공식 간담회를 개최하며 그 파장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지난달 환경부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 히트펌프를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보고한 것에 이은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즉 간담회가 단순한 의견 청취를 넘어, 정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효율 향상’ 같은 국가 목표 달성 과정에서 히트펌프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시그널로 해석된다.
간담회에 참석한 히트펌프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만남은 히트펌프 보급 확대를 위한 제도 마련의 첫 걸음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가진다.
특히, 히트펌프는 냉난방 효율이 뛰어난 친환경 설비로 알려져 있었음에도 그동안 보급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간담회를 통해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핵심 축으로 히트펌프를 설정했음이 명확해졌다.
정부가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에서 '화석연료 난방에서 전기화'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상황에서 히트펌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보일러가 투입 에너지로만 열을 생산하는 반면, 히트펌프는 외부의 열을 끌어와 투입 에너지의 3~5배에 달하는 열을 생산해 에너지 효율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또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연계 시 무탄소 냉난방 시스템 구축도 가능하다.
업계는 이번 간담회를 시장 확장의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건물용 난방을 넘어 산업 공정 폐열 활용, 데이터센터 냉각 등 신규 수요가 빠르게 열리고 있는 만큼, 정부의 보조금이나 제도적 지원이 더해지면 내수 시장 활성화는 물론 글로벌 경쟁력까지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실제로 글로벌 히트펌프 시장은 연평균 8~10%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유럽과 중국은 이미 의무화 및 보조금 정책을 통해 '탈보일러'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번 정책을 발판 삼아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란 평가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초기 설치 비용과 현행 전기 요금 누진제, 혹한기 효율 저하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업계는 정부가 보조금 제도나 히트펌프 전용 전기 요금제 신설 등을 통해 이러한 제약을 완화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기기 지정과 관련 반대 입장을 피력해 온 관련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기기 지정은 대기업에게는 일감을 몰아주지만 중소기업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정부가 이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 못한다” 면서 “관련 단체들의 반대 의견도 경청하면서 신중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지정하는 법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를 비롯한 기계설비 관련 협회 및 단체들은 '공기열 히트펌프 관련 법안 공동대응 TF'를 구성하여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고 있으며 이들은 해당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기술적, 경제적, 정책적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반대의 내용을 보면 우선은 기술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히트펌프의 혹한기 효율 저하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한다. 외부 공기의 열을 활용하는 히트펌프의 특성상, 난방 부하가 높은 한국의 겨울철에는 효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히트펌프가 기존 보일러를 완전히 대체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다음으로는 경제적 문제이다. 높은 초기 설치 비용 외에, 히트펌프 시스템의 설치 및 유지보수를 담당할 중소 시공업체들의 역량 강화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관련 전문 인력 양성 계획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부담 증가 및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포한다.
마지막으로는 정책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즉 기존 보일러 산업 생태계의 급격한 붕괴 가능성이다.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지정할 경우, 보일러 제조, 설치, 유지보수 등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 반대 의견의 핵심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대기업에 일감이 몰리는 것을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위기감을 반영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이번 간담회가 단순 지원책 논의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조만간 공공건물 의무 도입, 신축 건축물 에너지 기준 강화, 보일러 단계적 퇴출 등 규제성 조치를 함께 추진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업계에 도전 과제이지만, 동시에 선점 기업에는 '정책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환경부가 주관한 간담회는 정부가 히트펌프를 단순한 대체 난방기가 아닌,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에너지 솔루션으로 공식화하는 정책적 선언으로 봐야한다는 의견과 함께 향후 5~10년간 국내 히트펌프 산업의 성패는 정부의 정교한 제도 설계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에 달려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