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국내 4대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 과정에서 담보인정비율(LTV)을 사실상 담합한 행위가 처음으로 공정거래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정보 교환을 통해 대출 조건 경쟁을 제한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총 2천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오는 23일 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이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가계·기업 대상 부동산 담보대출과 관련한 LTV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이를 토대로 비슷한 수준의 LTV를 유지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에 따라 각 은행에 과징금 부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2021년 12월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 이후,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정보 교환 행위를 담합으로 제재한 첫 사례다. 공정위는 거래조건에 해당하는 민감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실질적인 경쟁이 제한됐다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4개 은행은 특정 지역이나 유형의 부동산에서 자사 LTV가 다른 은행보다 높거나 낮을 경우 영업 리스크와 경쟁력 저하를 우려해 이를 조정했다. 그 결과 LTV 수준은 자연스럽게 비슷한 범위로 수렴했고, 차주 선택권은 제한됐다.
실제로 2023년 말 기준 이들 4개 은행의 시장 점유율은 가계대출 61.3%, 기업대출 51.3%에 달했다.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행·농협은행·부산은행 등과 비교하면 LTV는 평균적으로 더 낮게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4대 은행의 평균 LTV는 비담합 은행보다 7.5%포인트 낮았고, 공장·토지 등 비주택 부동산에서는 격차가 8.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공정위는 이 같은 담합으로 차주가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줄어들고, 추가 담보 제공이나 고금리 신용대출로 내몰리는 등 거래 조건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개별 차주가 입은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은행들이 담합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직적으로 대응한 정황도 확인됐다. 은행 직원들은 수백에서 수천 건에 달하는 LTV 자료를 인쇄물로 전달받아 수기로 엑셀에 입력한 뒤 문서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를 법 위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증거로 봤다.
이번 담합으로 4개 은행이 얻은 관련 이자수익은 약 6조8천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를 기준으로 산정된 과징금은 하나은행 869억원, 국민은행 697억원, 신한은행 638억원, 우리은행 515억원이다.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약 4% 수준으로, 감경이나 가중 사유는 적용되지 않았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대출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는 대형 은행들이 유사한 LTV를 유지하면서 차주들의 거래은행 선택권이 크게 제한됐다"며 "앞으로 금융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정보 교환을 통한 경쟁 제한 행위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해당 사건을 2024년 말 한 차례 재심사한 뒤 지난달 전원회의를 다시 열어 최종 결론을 내렸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