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지난 2019년 일본이 반도체 공정의 핵심 재료 3종의 수출을 금지하는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국내 업계에는 경각심이 팽배해 졌다. 그동안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을 해외에 많이 의존했던 국내 업계로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상태다. 대체 수입처를 발굴하고, 신소재 개발 등 국내 기술력을 높이면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많이 낮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부장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2019년 31.4%에서 2021년 24.9%로 낮아졌다.
정부 역시 소부장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 정책을 진행, 2년간 여러 성과를 거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3년간(2019~2021년) '소부장 지원사업'을 통해 국제 과학논문 색인(SCI)급 논문 2171건, 특허출원 1570건(국내 1,148, 국외 386), 특허등록 466건(국내 407, 국외 59)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직·간접 매출(327억원)‧투자(726억원) 외에도 기술이전 164건, 기술료 100억원, 기업 지원 서비스 3만6403건 등의 성과도 창출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했던 초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를 비롯해 이차전지 보호필름과 자동차 센서 소재 등도 국산화에 성공했다.
자립화 성과도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재료연구원(KIMS)은 지난 17일 ▲전기차 배터리 방열(放熱) 세라믹 신소재 개발 ▲대형 타이타늄(Ti) 합금 블레이드 제조기술 국산화 ▲선형이온빔 장비를 활용한 표면처리기술 개발 등 3가지 성과를 공개했다.
전기차 배터리 방열 세라믹 신소재는 상용 산화물 소재인 알루미나(Al2O3)보다 낮은 온도에서 소결된다. 공기 중 수분과 반응하는 흡습성 문제도 해결했다. 알루미나보다 열전도가 높지만 소결 온도가 매우 높아 제조 단가가 비싸고, 흡습성 문제 등으로 사용에 제약이 있던 기존 산화마그네슘의 단점도 개선했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이 신소재를 전기차 배터리의 열을 방출하도록 돕는 방열 소재로 적용하면 전기차 안전성 문제 해결에 핵심 역할을 하고, 일본과의 방열 소재 경쟁에서도 한 걸음 앞서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발전터빈용 타이타늄 블레이드를 대체하는 대형 타이타늄 합금 블레이드의 국산화도 성공했다. 개발된 타이타늄 신합금은 상용 합금 대비 인장강도가 13% 높고, 합금량을 2.75wt% 줄여 무게를 낮췄다. 상용 합금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바나듐(V) 대신 저가의 합금원소(Fe, Al, Si)만을 첨가해 가격 경쟁력도 우수하다.
이와 함께 앞서 개발한 신형이온빔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수십㎛ 두께 필터 섬유의 비손상 표면처리도 성공했다. 이 장비는 초고주파용 안테나, 경량 운송기기, 생체 임플란트 접합 등 다양한 산업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재료연구원은 설명했다.
지난 7월 열린 과학기술정통부 소부장 성과 보고회에서도 세 가지 의미 있는 연구성과가 공개됐다. ▲영구자석용 희토류 일부 대체 소재 개발 ▲반도체용 미세 도금 소재 개발 ▲수소연료전지용 핵심 소재 개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네오디뮴(Nd) 등의 희토류는 모터에 사용하는 영구자석의 소재로서 현재 100% 수입하고 있다. 재료연구원과 성림첨단산업이 함께 고가인 네오디뮴의 30%를 세륨(Ce, Nd 대비 가격 1/20, 매장량 풍부)으로 대체하는 기술(모터 단가 10% 저감 기대)을 개발했으며, 성림첨단산업은 국내 유일의 영구자석 제조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모든 반도체칩 생산에 필요한 구리도금 소재(도금액)는 현재 100% 수입 중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기존 기술을 고도화해 세계 최고 성능의 고평탄 구리범프 형성이 가능한 도금액을 개발했으며, A사로 기술이전해 현재 국내 대기업 반도체 제조사 라인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통부는 연내 일부 국산화가 실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탄소중립‧수소경제 구현의 핵심인 수소연료전지 핵심 소재(불소계전해질막, 전극촉매, 전극용카본, 가스켓 등)별 수입 의존도는 거의 100%인 상황이다. 에너지기술연구원 주도로 소재별 국산화‧대체 기술을 개발 중이며, H사로 기술 이전(10억원)하는 등 일부 핵심 소재의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핵심기술 확보 가능성이 높다.
◆ 소부장 R&D 연구단·연구실 12곳 신규 선정… 반도체 '초순수' 기술 100% 국산화 추진
정부는 소부장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원을 계속할 방침이다. 지난 3일 과학기술정통부는 나노‧소재기술개발 사업의 2021년도 신규 과제를 선정, 8개 국가핵심소재연구단과 4개 미래기술연구실이 신규 출범한다고 밝혔다.
나노·소재기술 개발 사업은 소부장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수준의 원천기술 확보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정통부의 대표 사업이다. 올해부터는 연구개발 핵심 품목 자립화를 위한 국가핵심소재연구단 미래 첨단소재 확보를 위한 소재분야 미래기술연구실 등으로 구분해 지원하고 있다.
국가핵심소재연구단에는 ▲초저백금 연료전지 촉매 개발 플랫폼 연구단(KAIST) ▲이차전지용 실리콘 음극 연구단(한국세라믹기술원) ▲고강도 알루미늄합금 판재 연구단(재료연) ▲바이오매스 기반 수송기기 소재 개발 연구단(서울대) 등이 포함됐다.
미래기술연구실에는 ▲홀로그램용 능동 광메타 소재 및 소자 연구실(ETRI) ▲바이오 인터페이싱 소재 연구실(KIST) ▲나노구조 기가 강도 알루미늄 연구실(재료연) ▲인공지능-스마트랩 기반 산화물 고체전해질 혁신 연구실(서울대) 등이 선정됐다.
과학기술정통부는 12개 연구단‧연구실에 5년 동안 총 720억원을 지원하고 주기적인 교류회‧토론회 개최, 특허 전략 수립‧실행, 기술 수요 기업 조사‧연계 및 산학연 협력 등의 연구개발과정 수행 밀착 지원도 추진한다.
이창윤 과학기술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국가핵심소재연구단을 통해 핵심 품목 기초·원천기술 자립화를 지원하면서 미래기술연구실을 확대해 미래 선도 품목 등 미래첨단소재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초순수' 설계기술 국산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초순수는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용수(ultra pure water)로 이제까지 생산기술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해 핵심 기술의 국산화가 시급했다.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오는 2025년까지 연구비 480억원(국고 300억원)을 마련해 반도체 초순수 설계기술 100% 국산화를 모색한다. 초순수 생산을 비롯해 폐수 재이용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기업 간 역할 분담을 통해 기술을 신속하게 개발할 계획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순도 공업용수 생산 핵심공정 기술 개발과 초순수 실증 플랜트 운영 등을 통해 2025년까지 초순수 설계 100%, 시공 60%의 국산화를 추진하겠다"며 "파운드리 등 협력업체에서 사용하는 범용성 기술은 정부 주도로 폐수 재활용 R&D를 추진해 반도체 폐수 재이용률을 현재의 63%에서 7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박준영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