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3천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둘러싸고 한미 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이 8년간 총 2천억달러(약 280조원)에 달하는 현금 투자를 요구한 반면, 한국 정부는 재정 부담과 외환시장 안정 문제를 이유로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금 투자 비중을 놓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규모가 작아져야 한다고 보고 있고, 미국은 더 커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최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후속 협의를 진행하고 이날 새벽 귀국했다.
그는 "시기를 정해놓고 협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우리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타결된 관세 협상의 후속 이행안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합의안은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투자 구조, 특히 '현금 투자 비중'을 놓고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국은 당초 전체 투자금 중 5% 이내만을 직접 투자(현금)로 하고, 나머지는 보증 형태로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반면 미국은 일본과의 선행 협상 사례처럼 '직접 투자 중심'의 백지수표식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일정 부분 양보해 직접 투자 비중을 다소 높이되, 재정 부담 완화를 위해 8년에 걸친 분할투자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매년 250억달러씩 8년간 총 2천억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1천500억달러는 보증 등으로 채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동만 의원이 "8년간 2천억달러 투자 방안이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사실이냐"고 묻자, 김 장관은 "정확히 확인은 어렵지만 그런 논의가 있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협상 원칙에 대해 "한미 상호이익, 상업적 합리성, 금융·외환시장 안정 등 세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외환시장 부작용에 대해 미국도 일정 부분 이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이 선(先)투자 입장을 고수하던 부분은 상당히 접은 상황"이라며 "해당 부분에 대해선 미국 측의 이해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이 요구하는 현금 투자 규모는 국민경제와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수용하기 어렵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용범 정책실장도 이날 귀국길에서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해선 양국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하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은 오는 29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마무리될 가능성이 주목받았으나, 정부 안팎에선 "극적 타결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양국 입장을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김 실장 역시 "APEC 이전에 추가로 대면 협상을 할 시간은 없다"며 "APEC 계기 타결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