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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에 새겨진 100년의 기도...도시의 역사가 된 '성탄 건축 기행'

1년 차로 세워진 명동성당과 정동제일교회, 붉은 벽돌로 쓴 '건축 라이벌' 역사
명동의 '목조 리브볼트'와 정동의 '목조 트러스'...당대 구조 공학의 결정체

 

【 청년일보 】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가 도심을 수놓는 2025년 성탄절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100년의 시간을 견딘 붉은 벽돌의 미학을 만날 수 있다.

 

건설·건축적 관점에서 이들 성당과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당대 최고의 시공 기술과 구조 역학이 집약된 '근대 건축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서울 근대 건축의 양대 산맥인 정동제일교회(1897년)와 명동대성당(1898년)이 불과 1년 차이로 완공됐다는 사실이다.

 

대한제국 선포(1897년) 시기와 맞물려, 당시 서양 문물의 두 축이었던 미국(개신교)과 프랑스(가톨릭)가 각각 '왕궁 옆 평지'와 '도성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터를 잡으며 붉은 벽돌을 통해 서로 다른 근대화의 풍경을 그려냈다.

 

먼저 1898년 완공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은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붉은 벽돌조 건물의 표준을 제시했다. 건축 양식은 전형적인 '고딕(Gothic)'으로 핵심은 뾰족한 '첨두아치(Pointed Arch)'를 사용해 건물의 수직성을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천장 구조다. 통상적인 서양 고딕 양식은 무거운 석조 리브 볼트를 사용하지만, 명동대성당은 하중을 줄이기 위해 '목조 리브 볼트(Wooden Ribbed Vault)'를 적용했다.

 

조적조(벽돌) 벽체 위에 가벼운 목재로 뼈대를 짜고 회반죽을 바른 이 공법 덕분에 기둥에 가해지는 무게를 줄이면서도 웅장한 공간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의 벽돌을 톱니처럼 물려 쌓은 정교한 조적 기술은 127년이 지난 지금도 견고함을 자랑한다.

 

 

반면 명동성당보다 1년 앞선 1897년 준공된 정동제일교회는 실용적인 구조미를 보여준다. 덕수궁 돌담길에 위치한 이곳은 붉은 벽돌의 '빅토리안 고딕' 양식이지만 화려함보다는 단아함이 돋보인다.

 

건축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효율적인 공간 설계다. 많은 인원이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하는 집회 공간의 특성상,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줄이는 것이 과제였다.

 

이를 위해 지붕을 삼각형으로 결구된 '목조 트러스(Truss)' 구조로 짰다. 지붕의 자중과 하중을 양쪽 벽과 측면 기둥으로 안전하게 분산시키는 이 구조 덕분에,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대형 기둥 없이 탁 트인 넓은 예배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기능성에 충실한 당대 공학적 설계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중구 정동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1926년 착공해 1996년에야 완성된 이 건물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을 따른다. 뾰족함 대신 둥근 아치와 육중한 벽체, 작은 창문이 특징으로 마치 요새와 같은 단단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흥미로운 점은 서양식 벽돌 구조체 위에 한국 전통 양식을 결합했다는 것이다. 로마네스크의 뼈대를 갖췄으되 지붕에는 한국 전통 기와를 얹고 처마의 곡선을 살렸다. 인사동 골목에 숨어있는 승동교회(1912년 준공) 역시 붉은 벽돌과 둥근 아치 등 로마네스크풍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서양 건축 양식이 한국 땅에 들어와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서울을 벗어나 인천 강화도로 향하면 건축 '토착화'의 정점을 만날 수 있다. 1900년 축성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언뜻 보면 웅장한 팔작지붕을 얹은 사찰이나 궁궐 같지만 내부는 전형적인 서양 초기 교회 건축 형태인 '바실리카(Basilica)' 단면 구성을 따르고 있다.

 

장방형 평면 위에 가운데가 높은 천장을 두고 양옆으로 열주가 길게 늘어선 구조다.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편수가 백두산 적송과 강화도 화강암을 사용해 지은 이 건물은, 한옥의 외피 속에 서양의 공간 구성을 담아낸 '한옥 바실리카'라는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탄생시켰다.

 

약현성당(1892년)을 포함해 이들 근대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시간이 빚은 내구성'이다. 빠르게 타설되는 현대의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사람의 손으로 벽돌과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조적조 건물은 세월이 흐를수록 재료의 깊이감이 더해진다.

 

성탄절 오후에는 건축 거장들의 숨결이 담긴 오래된 성당과 교회를 거닐며 붉은 벽돌이 건네는 무언의 위로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잘 지은 건축물은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가 된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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