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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목불인견] 제살 깎아먹는 배터리 전쟁

'황금알 낳는 거위' 전기자동차 배터리 소송 둘러싼 국내 기업 간 치킨게임 심화
소송에 묶여 막대한 재원과 역량 소모, '화두'를 타협과 합의로 옮기는 노력 시급

 

【청년일보】 수년 전부터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리고 있다. 이 같은 비유에는 우리나라 산업의 주력인 반도체를 이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기대도 담겨 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야는 매년 25%씩 성장해 오는 2025년에는 글로벌 시장 규모가 1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150조원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뛰어넘는 것이다. 지금은 전기자동차 제조업체가 갑(甲), 배터리 제조업체가 을(乙)이지만 시장의 관심은 배터리로 향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성능은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황금알 낳는 거위'를 예약해 놓은 상태다.

 

우리나라에는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가  3개 있다.  이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화학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원가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두 회사는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축으로 한 2차전지 사업을 차세대 주력 성장 분야로 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재계 3, 4위 그룹의 대기업이 정면 충돌해 세기(世紀)의 영업비밀 및 특허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사의 소송은 세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커 '배터리 대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소송은 최근 수년 간 LG에너지솔루션 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동하면서 불거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의 핵심인력을 빼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상적인 경력사원 채용 과정을 거쳤고, 특히 빼 온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스스로 온 것이라는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우리나라 법원이 아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것은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지식재산권 위반 여부를 판정하고, 해당 상품에 대한 수입금지 명령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란 관측이다. ITC 특유의 증거개시제도(discovery)를 통해 증거보전이 유리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영업비밀과 특허 침해를 놓고 1년 반 넘게 수천억원 대의 소송을 벌이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지난 2월 10일 ITC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특허 침해 소송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예비결정을 내렸다.

 

ITC 최종 판결의 90%는 예비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승소한 LG에너지솔루션이 특허 침해 소송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SK이노베이션이 승기를 잡으면서 소송의 향방은 또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양사 모두에게 미래의 핵심 먹거리 사업이다. 양보가 쉽지 않은 '샅바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국제 소송전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이번 ITC 판결에서 보듯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되기도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국내 기업 간 벌이는 '치킨게임'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일본, 유럽 업체들은 최근 글로벌 패권을 잡기 위해 합작이나 협업에 나서는 등 합종연횡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사가 소송에 묶여 막대한 재원과 역량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제살 깎아먹기다. 양사가 화두(話頭)를 타협과 합의로 옮겨보는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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