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앙에 푸른색으로 빛나는 건물이 대신증권 새 사옥이다. 여의도 시대를 접고, 다시 초창기처럼 시내 중심가로 이동했다. [사진=청년일보]](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20625/art_16557972185583_62931c.jpg)
【 청년일보 】 대신증권[003540]이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NPL) 전문 자회사 대신F&I의 전공 영역 원대복귀 움직임이 시선을 모은다. NPL 사업을 확대하도록 대신F&I를 배려한 것인데, 이 회사가 그간 나인원한남, 춘천 온의지구 등 부동산개발을 거치며 디벨로퍼로서 닦아온 입지를 생각하면 아쉽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다만 NPL 시장에서의 지위가 그간 부동산에서의 새 위상 마련과 반비례로 약해졌다는 우려를 불식하는 의미에서는 호평도 나온다.
본업인 NPL 투자보다 부동산 사업을 우선하다 뒤늦게 NPL로 회귀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 2014년 4월 우리금융으로부터 우리F&I를 인수, 대신F&I로 사명을 변경하고 그해 10월 사업목적에 '부동산 개발 및 임대업'을 추가했다.
대신증권의 부동산금융은 그룹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대신증권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통해 금융을 주선하면, 중순위 대출에 대신저축은행이 참여하고 후순위 대출에 대신F&I가 투자하는 것.
하지만 부동산 관련 사업은 새로운 시장인 동시에 대형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엔 리스크도 크다는 양면의 속성이 있다. 또한 대신F&I가 나인원한남 등 부동산개발 사업에 집중하는 동안 NPL 사업 비중은 축소됐다. 2018년 말 약 2천130억원 수준이던 NPL 영업수익은 2020년 말 1천400억원대로 떨어졌다.
이제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긴축 이후를 버텨야 하는 여러 금융기업들이 새 시장 확보 차원에서 NPL을 노리고 뛰어들고 있다. 대신F&I 역시 환경 변화에 민감히 반응하고 있다. 이 회사의 NPL 투자는 지난해 말 2140억원대로 다시 증가했으나, 본업에 뒤늦게 회귀한 게 아니냐는 기우를 100% 불식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심기일전에 해당 부문 시장점유율 1위 등극을 노리려는 모멘텀을 찾을지 주목된다.
관건은 대신증권 등 그룹의 '의지'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대신F&I는 나인원한남 사업이익을 통해 확대된 투자여력을 바탕으로 부실채권부문의 경쟁력 제고 및 사업기반 안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밖에서 거둔 이익을 바탕으로 결과적으로는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유혹을 떨치고 다각화와 특기 살리기, 위기를 관리하는 걸 한꺼번에 잘 하기는 어렵다.
다만 모체인 대신증권의 지난날을 보면 이런 행보가 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증권은 1962년 삼락증권으로 시작,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우고 1976년 현 명동예술극장 자리에서 현재 이름으로 첫 간판을 내걸었다. 여의도 이전 후엔 기업공개(IPO) 부문과 회사채 인수 등 발행 시장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3저 덕을 본 증시 활황 바람을 탔다. 일명 5대 거대 증권사와 대신 등 명문 부띠끄증권사들의 시대다. 1984년 대신경제연구소, 1986년 대신개발금융, 1988년 지금의 대신자산운용의 전신인 대신투자자문을 계속 설립하며, 종합 금융그룹으로 진화했다.
1997년 말 벌어진 외환 위기와 대우채 파동, 2000년대 초 카드채 사태, 2008년 글로벌 신용 위기, 2011년 PIIGS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증권업계를 덮쳤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을 겪으면서 1980년대 이래 대신증권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5대 증권사 대우·동서·쌍용(현 신한금융투자)·LG(현 NH투자증권)들은 회사가 없어지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대신증권은 달랐다.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며 리스크 관리에 성공했다.
1994년 종합주가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대신증권은 그 직후인 1995년 단기 차입금을 모두 갚았다. 이렇게 빨리 무차입 경영에 돌입했기 때문에 IMF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우수한 투자은행(IB) 인력들이 대신증권을 상당수 이탈하기도 했다. 여기에 저가 수수료로 무장한 인터넷기반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리테일 브로커리지 경쟁력이 약화됐다. 대신증권은 시대의 변화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제한된 자기 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었다. 증권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금융회사를 인수하고 신규 인가를 받아 새로운 사업 영역에 진출했다.
![이어룡 대신파이낸셜그룹 회장은 부동산으로의 업무 확장에 관심과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사진은 20일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 중인 모습. [사진=대신증권]](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20625/art_16557972969634_fd3e77.jpg)
출발은 저축은행 인수였다. 2011년 8월 중앙부산·도민저축은행 등의 자산 및 부채를 인수했다. 대신저축은행은 출범 10년 만에 자리를 완전히 잡았다. 이어서 부동산 등 대체 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대신증권의 손자회사인 디에스한남을 통해 개발한 최고급 주택 단지 '나인원한남' 분양이 성공리에 마무리됐고 큰 수익을 거뒀다.
다만 여기서 디에스한남, 그리고 대신F&I의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다. 분양가상한제·종합부동산세법 개정 등 위기가 오면서, 임대 후 분양을 털어내는 시점을 조정하는 강수를 뒀다. 당시 분양 시점 조정 등에 불만을 가진 일부 계약자가 소송을 걸었지만, 결국 큰 잡음없이 마무리됐다. 나인원한남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대신증권은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올렸다.
대신증권은 이 같은 사업 다각화와 리스크 여러 바구니 나눠 담기, 본업에 충실한 여러 회사들이 각각 활약하는 방식을 통해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 체인을 구축했다. 미리 벌고, 위기에 선제적으로 빠져나오는 방식이 F&I에도 적용된다. 다만 부동산은 더 잘 할 수 있는 다른 회사에 맡기는 셈이다.
구경회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포트폴리오가 대부분 비슷한 한국의 증권업계에서 대신증권처럼 부동산 금융, NPL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기업이 있다는 것은 투자 선택의 폭을 넓혀 줄 것"이라고 대신증권과 그 계열사들의 저력을 평가했다. 앞서 소개한 나이스신용평가의 "나인원한남 이익을 통해 확대된 투자여력을 바탕으로 부실채권부문의 경쟁력 제고가 가능"이라는 길을 차질없이 걸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청년일보=임혜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