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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석구석] ⑤ 강서구, '마곡의 비상'과 '화곡의 눈물', 고도 제한 아래 갈라진 운명

첨단 R&D와 '코엑스마곡'의 미래, 서울 서남권 경제 지도를 다시 그리다
목동과 마곡 사이 갇힌 화곡, 고도 제한과 난개발이 낳은 '빌라촌의 눈물'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다섯 번째 장소로, 첨단 산업의 미래와 고도 제한의 그늘이 공존하는 극적인 대비의 공간, 강서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의 서쪽 관문인 강서구는 서울시 자치구 중 서초구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거대 도시다.

 

드넓은 땅만큼이나 현재 강서구는 가장 극적인 '두 얼굴'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코엑스마곡'을 필두로 한 마이스(MICE) 복합단지와 수많은 대기업 및 바이오 연구소, 그리고 '강서 미라클메디 특구'의 최첨단 의료 인프라가 집결한 마곡지구가 화려한 위용을 뽐낸다.

 

반면, 길 하나 건너편에는 붉은 벽돌의 저층 빌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숨 막히는 주차 전쟁을 벌이는 화곡동이 있다.

 

강서구의 공간 변화 서사는 논밭이었던 땅이 천지개벽하여 서울의 경제 심장으로 떠오른 '성공 신화'인 동시에, 그 화려한 빛 바로 옆에서 소외되고 정체된 원도심의 '상대적 박탈감'을 보여주는 양극화의 현장이다.

 

 

◆ 곡창지대와 소금의 길, 그리고 '하늘길'의 개통

강서구는 예로부터 비옥한 토양을 갖춘 물류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양천현'이라는 독립된 고을이었던 이 지역은 한강 하류의 김포평야를 끼고 있어 서울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꼽혔다.

 

염창(鹽倉)이라는 지명은 서해안에서 올라온 소금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곳에서 유래했을 만큼, 강서구는 수도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또한, 가양동은 구암 허준이 태어나 '동의보감'을 집필한 곳으로 깊은 역사적, 문화적 뿌리를 간직하고 있다.

 

이후 1914년 김포군에 병합되었다가 1963년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었고, 1977년 현재의 강서구로 독립 신설되었다. 강서구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공항의 건설이었다.

 

1939년 비행장 건설 당시 행정구역이 김포군 양서면이었기에 '김포공항'으로 명명된 이 거대한 시설은, 1958년 국제공항으로 승격하며 지역 경제를 이끄는 엔진이 되었다.

 

하지만 공항은 동시에 강서구 전역에 강력한 '고도 제한'이라는 족쇄를 채웠다.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규제는 수십 년간 강서구의 스카이라인을 낮고 평평하게 눌러놓았다.

 

이로 인해 1970~80년대 화곡동 일대에는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과 저층 빌라 중심의 서민 주거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 '상전벽해' 마곡지구, 서울의 경제 지도를 바꾸다

2000년대 후반까지도 논밭으로 남아있던 마곡지구의 개발은 강서구의 위상을 완전히 뒤바꾼 사건이다.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미개발지였던 마곡은 현재 LG사이언스파크, 롯데, 코오롱 등 대기업의 R&D(연구개발) 센터가 집결한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특히 현재의 마곡은 단순한 업무 지구를 넘어섰다.

 

컨벤션 센터와 호텔, 업무 시설이 결합된 '르웨스트'와 이곳에 들어서는 '코엑스마곡'은 서울 서남권의 새로운 마이스(MICE)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대웅제약, 삼진제약 등 국내 유수의 제약·바이오 기업 연구소가 대거 입주해 한국판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꿈꾸고 있으며, 이대서울병원을 중심으로 한 '강서 미라클메디 특구'는 척추·관절·난임 등 전문 병원이 밀집해 최첨단 의료 인프라를 자랑한다.

 

뿐만아니라 공항 인접성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며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잘 정비된 도로망과 서울식물원이라는 거대 녹지, 세련된 오피스 빌딩이 어우러진 마곡은 강서구가 더 이상 '서울의 변방'이 아닌 '미래 산업의 중심'임을 증명하는 공간이 되었다.

 

 

◆ 샌드위치 신세 된 원도심, '화곡동'과 전세 사기의 그늘

마곡의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편에는 화곡동과 까치산역 일대로 대표되는 원도심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 지역은 1988년 강서구에서 분리되어 나간 후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성장한 '양천구 목동'과, 최근 첨단 도시로 변모한 '마곡지구'의 화려한 비상 속에 가려진 '개발의 사각지대'로 남겨졌다.

 

한 뿌리였던 목동이 대단지 아파트촌으로, 같은 구의 마곡이 미래 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동안, 화곡동은 저층 주거 밀집 지역으로 남겨져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극대화되었다.

 

화곡동과 까치산 일대는 좁은 도로와 만성적인 주차난, 그리고 노후화된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문제는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항공 고도 제한으로 인해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없어 재개발 사업성이 떨어지는 데다, 지난 수년간 무분별하게 지어진 신축 빌라들이 난립해 있어 노후도 요건을 충족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이곳은 최근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의 직격탄을 맞으며 청년 주거 불안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갭투자의 성지가 되었던 화곡동의 빌라들은 집값 하락과 함께 '깡통 전세'로 전락했고, 마곡의 청년들이 첨단 기업에서 미래를 설계할 때,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화곡의 청년들은 전세 보증금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현실은 강서구가 품은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됐다.

 

 

◆ '고도 제한' 97.3%, 멈춰버린 시간과 지역 갈등

강서구 전체 면적의 97.3%는 여전히 항공법에 따른 고도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다.

 

이는 공항동, 방화동 등 공항 인접 지역의 재개발과 재건축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주민들은 마곡지구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길 하나 건너 마곡은 천지개벽했는데, 우리는 수십 년째 비행기 소음과 낡은 집에서 살아야 하느냐'는 원도심 주민들의 불만은 고도 제한 완화를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화곡동 '남부골목시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A씨(60대)는 "여기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 주변은 바뀐 게 정말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라며 "재개발을 하고 싶어도 공항 때문에 안 된다. 주차 문제도 너무 심각하다"라고 정체된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강서구는 첨단 도시 마곡과 노후화된 원도심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마곡지구의 성장이 지역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화려한 외관 뒤편에 놓인 주거지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도 제한 완화와 실질적인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해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단절된 도시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적인 도시 계획이 요구된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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