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11 번째 장소로, 100년 역사의 굴곡을 딛고 서울의 새로운 경제 중심으로 부상하는 용산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용산(龍山)은 지명 그대로 '용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으로는 남산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춰 예로부터 서울 최고의 명당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천혜의 지리적 이점과 전략적 가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용산을 외세의 각축장이자 시민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금단의 땅'으로 만들었다.
고려 말 몽골군의 병참기지를 시작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 사령부와 해방 후 미군기지에 이르기까지 용산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늘 '군사 기지'이자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방인의 공간'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2026년 1월, 용산은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에 섰다. 지난 3년여간 머물렀던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복귀하며 '정치 1번지'로서의 짧고 굵은 실험을 끝냈고, 10여 년간 멈춰 섰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첫 삽을 뜨며 명실상부한 '경제 심장'으로의 도약을 알렸다.
◆ 수탈의 통로에서 대륙의 관문, 그리고 '51조 원의 승부수'
용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또 다른 핵심은 '철도'다. 1900년 문을 연 용산역은 단순한 정거장이 아니었다. 일제는 한강과 인접하고 평야가 넓은 용산을 군사 및 물류의 거점으로 삼았다.
용산역을 기점으로 경부선과 경의선이 놓였고, 이는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용산역 주변에 드넓게 펼쳐진 정비창 부지와 철도 병원 관사 등은 당시 철도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철도 도시의 흔적이다.
광복 이후에도 용산역 일대는 산업화의 역군들을 실어 나르는 통로였으나, 지상으로 뻗은 수많은 철로와 광활한 정비창 부지는 용산구를 동서로, 남북으로 갈라놓는 거대한 장벽이기도 했다.
이 단절의 땅 용산정비창(약 45만㎡)은 이제 서울의 미래를 책임질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0일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실시계획을 인가하며 총사업비 51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서울역에서 용산역을 거쳐 한강 변으로 이어지는 이 구역은 '복합수직도시'를 비전으로 한다. 용도는 크게 글로벌 헤드쿼터가 들어설 '국제업무존', 오피스와 리테일이 결합된 '업무복합존', 그리고 주거·의료 시설이 배치된 '업무지원존' 등 3개 구역으로 나뉜다.
시는 2028년까지 부지 조성을 마치고 이르면 2030년부터 글로벌 기업과 주민 입주를 시작한다는 목표다. 개발이 완료되면 약 14만6천명의 고용 창출과 32조원이 넘는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되며, 용산은 광화문·여의도·강남을 잇는 서울 도심 3축의 새로운 중심점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 백사장에서 '부촌의 원조'로, 동부이촌동의 탄생
용산의 주거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동부이촌동(이촌1동)'이다. 본래 이곳은 여름철이면 홍수로 물에 잠기던 드넓은 백사장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얼음을 저장하던 서빙고가 인근에 있었고,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강수욕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비던 유원지였다.
이촌동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60년대 후반 한강 공유수면 매립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정부는 부족한 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강변의 모래밭에 높은 제방을 쌓고 흙을 채워 지반을 높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땅 위에 1970년 국내 최초의 중산층 대상 고급 아파트인 '한강맨션'이 들어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서구식 입식 구조와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춘 이곳은 강남 개발 이전에 '아파트 부촌'의 기준을 정립했다.
오늘날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와 초고층 '래미안 첼리투스'가 공존하는 이촌동은, 한남동의 폐쇄적인 단독주택 부촌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전통적인 중산층 부촌'으로서 용산의 주거 가치를 지탱하고 있다.
◆ 대통령실 떠난 자리, 공원과 마천루의 '공존 실험'
최근 용산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다. 지난달 대통령실 이전으로 삼각지 일대의 삼엄했던 경비와 매일같이 이어지던 시위 소음은 잦아들었다. 주민들은 '일상의 회복'을 반기면서도, 대통령실 이전이 가져왔던 지역 개발의 동력이 상실될까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힌 자리는 이제 도시 계획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120년 만에 온전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용산공원'이다. 약 300만㎡(90만 평) 규모의 반환 부지에 조성되는 이 공원은 단순한 녹지를 넘어, 단절되었던 용산의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생태 축이자 역사 치유의 공간이다.
공원 동측에는 국제업무지구의 마천루가, 서측과 남측에는 재개발을 통해 변모하는 주거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시는 이곳을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거대한 녹지와 고밀도 빌딩 숲이 공존하는,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경관으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 젠트리피케이션과 양극화, 화려함 속의 그림자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 이면에는 그늘도 짙다. 아모레퍼시픽, 하이브 등 대기업 입주와 용산공원 개방 이슈로 급부상한 한강로 일대 '용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래된 인쇄소와 철물점, 백반집이 있던 골목은 MZ세대를 겨냥한 이국적인 카페와 식당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3.3㎡당 1억원을 호가하는 땅값 상승은 기존 토박이 상인들을 외곽으로 밀어냈다.
또한, 화려한 국제업무지구 조감도 바로 옆 동자동 쪽방촌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용산이 해결해야 할 극심한 양극화의 숙제로 남아 있다.
삼각지역 인근에서 15년째 식당을 운영해 온 A씨는 "대통령실이 떠나고 시끄러운 건 좀 없어졌다. 다만 그 이전에도 이 주변은 상권이 많이 바뀌고,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면서도 "사실 그 이전에는 대구탕 골목이나 유명했지 나머지 부분은 조용조용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 100년의 고립 끝내고 '서울의 심장'으로
용산구는 지금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미군 기지가 떠난 자리에 들어설 생태 공원, 정비창 부지에 솟아오를 마천루, 그리고 백사장에서 부촌으로 변모한 이촌동의 재건축 흐름은 용산이 맞이할 격변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도 산적해 있다.
경부선 철도 지하화를 통한 동서 생활권의 물리적 결합, 그리고 막대한 개발 이익이 원주민과 주거 취약 계층에게도 스며들 수 있는 포용적인 도시 설계가 필수적이다. 100년 만에 '이방인의 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경제 심장'으로 다시 뛰기 시작한 용산. 그 거대한 실험이 서울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