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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석구석] ⑧ 노원구, '주거 영웅'에서 '재건축 잠룡'으로…늙어가는 '계획도시'

갈대밭 위 세워진 '상계동 신도시', 30년 세월 넘어 '노후 계획도시'의 대명사로
'강북의 대치동' 명성 뒤엔 주차 전쟁과 녹물…베드타운 넘어 '자족 도시' 꿈꾼다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8번째 장소로, 1980년대 주택 공급의 영웅에서 이제는 도시 재생의 시험대가 된 노원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 동북부의 끝자락, 수락산과 불암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노원구는 대한민국 주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상징적인 도시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아 거대한 '아파트 숲'을 이루는 이곳은, 1980년대 폭발하는 서울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거대한 계획도시다.

 

노원구의 공간 서사는 갈대만 무성했던 습지가 빽빽한 콘크리트 숲으로 변모한 '개발의 기적'이자, 30년이 지나 낡고 병든 도시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노후 계획도시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 갈대밭 '마들평야'에서 올림픽을 위한 신도시로

 

노원(蘆原)이라는 이름은 '갈대(蘆)가 많은 들판(原)'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계동 일대는 '마들평야'라 불리며 갈대밭과 비닐하우스가 무성했던 서울의 변두리였다.

 

이곳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추진한 상계지구 택지개발사과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이었다.

 

도시 미관을 정비하고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일대의 드넓은 평야는 대규모 택지 지구로 지정되었다.

 

논밭이 사라진 자리에는 성냥갑 같은 주공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노원구는 단기간에 수십만 명의 인구를 받아내는 서울의 거대한 '베드타운'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노원구의 중심인 상계동은 행정동이 1동부터 10동까지 나뉘어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단일 법정동으로는 서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다.

 

 

상계주공아파트가 1단지부터 16단지까지 순차적으로 들어서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유입되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세분화해야만 했던 당시의 급박했던 도시 팽창 과정을 방증한다.

 

다만 대규모 택지 조성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도 불거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도시 미관 정비'를 명분으로 상계동 일대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거주민들과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당시의 상황은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으로 기록되기도 했으며, 이는 국가 주도의 급격한 도시 개발 정책이 야기한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 '강북의 대치동' 교육 특구와 천혜의 자연

 

계획도시로 조성된 덕분에 노원구는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도로와 풍부한 녹지를 자랑한다.

 

수락산, 불암산, 초안산 등 명산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고, 당현천과 중랑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주민들의 훌륭한 쉼터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흉물로 방치되었던 경춘선 폐철길이 '경춘선 숲길'로 재생되면서 젊은 층이 찾는 새로운 문화 명소로 떠올랐다.

 

노원구의 또 다른 확실한 정체성은 바로 '교육'이다.

 


중계동 은행사거리, 일명 '은사'는 대치동, 목동과 함께 서울 3대 학원가로 꼽히며 '소(小)대치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대로변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학원 건물들 사이에는 유흥업소나 유해 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청정 교육 환경'은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맹모(孟母)들을 노원구로 불러 모으는 강력한 자석 역할을 했다.

 

밤 10시가 되면 학원을 마친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 도로를 점령한 노란 학원 버스와 학부모 차량들의 행렬은 중계동만의 독특한 진풍경이다.

 

실제로 노원구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전입해 대학 입시를 마칠 때까지 거주하는 '학주근접' 수요가 탄탄해, 부동산 하락기에도 전세가 방어율이 높은 지역으로 통한다.

 

◆ 늙어가는 도시, 주차 전쟁과 녹물

 

그러나 30년의 세월은 계획도시의 영광을 빛바래게 했다.

 

19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일제히 재건축 연한(30년)을 훌쩍 넘기면서 도시는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아침마다 이중 삼중 주차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심각한 주차난, 낡은 배관에서 나오는 녹물, 층간 소음 등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또한, 주거 기능에만 치우친 도시 설계는 '베드타운'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자족 기능을 할 수 있는 기업이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여, 아침이면 동부간선도로와 지하철 4호선, 7호선은 강남과 도심으로 출근하려는 인파로 마비가 된다.

 

직주근접을 선호하는 청년 세대에게 이러한 '출퇴근 전쟁'은 지역을 떠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경제 허리층인 2030 세대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그 자리를 은퇴한 고령층이 계속 머물면서, 노원구는 서울에서 고령화 속도가 매우 가파른 자치구 중 하나가 됐다.

 

실제 상계동 주공아파트에서 15년째 거주 중인 A씨는 "처음 입주했을 때는 산도 있고 공기도 좋았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많이 낡은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지하주차장이 없어 매일매일이 고역"이라고 노후화된 주거 환경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 재건축은 생존, 베드타운 넘어 '자족 도시'로

 

노원구에게 재건축은 단순한 부동산 투자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주민들은 정부의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등을 통해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되고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단순한 아파트 교체를 넘어, 도시의 기능을 재편하는 수준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으로 미래를 위한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특히 월계동 광운대역세권 개발 사업은 강북권의 지도를 바꿀 핵심 변수로 꼽힌다.

 

낡은 물류센터 부지를 주거·업무·상업이 결합된 랜드마크로 변모시키는 이 사업은,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이전까지 확정지으며 지역 경제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창동·상계 신경제 중심지 조성을 통해 바이오 메디컬 클러스터를 유치하려는 노력은 노원구가 베드타운의 오명을 벗고 '일자리가 있는 자족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노원구는 지금 30년 전의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노후화된 주거 단지의 체계적인 정비와 자족 기능 확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과거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했던 상계동의 저력이 미래형 도시 재생의 성공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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