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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석구석] ⑦ 마포구, ‘자유로운 영혼’ vs ‘부동산 계급’간 기묘한 동거

쓰레기 매립지에서 DMC로, 달동네에서 '마용성'의 중심으로...상전벽해의 역사
홍대 상권의 무한 팽창과 아현·성산의 정비사업, 서울 서부권 지형도를 바꾸다

 

<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일곱 번째 장소로, 문화적 전위와 주거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서울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마포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 서북권의 관문 마포구는 서울의 도시 위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현장 중 하나다.

 

과거 한강의 물류 거점이자 도시의 필요악(쓰레기 매립지)을 떠안았던 '주변부' 마포는 21세기 들어 문화와 산업, 주거가 폭발적으로 융합된 '핵심부'로 완벽한 신분 상승을 이뤄냈다.

 

마포의 변신은 단순한 물리적 개발을 넘어선다. 홍대 거리에서 뿜어내는 자생적인 '문화 권력', 상암 DMC라는 기획된 '산업 권력', 그리고 아현·공덕의 재개발이 낳은 '주거 권력'이라는 이질적인 세 축이 맞물려 돌아가며 도시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쓰레기 산 위에 디지털 마천루를 세우고, 낡은 골목에 문화적 감성을 입혀 거대 자본을 끌어당기는 마포의 방식은, 서울이 이제 단순한 확장을 넘어 '콘텐츠'와 '재생'으로 도시의 가치를 창출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쓰레기 매립지의 기적, 월드컵이 쏘아 올린 상암의 환골탈태

 

현대 마포구의 공간 변화 중 가장 극적인 반전은 상암동에서 일어났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서울 시민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매립하며 형성된 난지도는 90m 높이의 거대한 산을 이루었고, 악취와 침출수 문제로 인해 도시의 대표적인 기피 시설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 지역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대표적이다. 상암동이 주경기장 부지로 선정되면서, 서울시는 쓰레기 매립지를 생태 공원으로 복원하는 대규모 안정화 사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메탄가스가 뿜어져 나오던 쓰레기 산은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라는 광활한 녹지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인근에는 웅장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건립되며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월드컵이 남긴 유산은 공간의 산업적 재편으로 이어졌다. 경기장 인근에는 상암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가 조성돼 MBC, SBS, YTN 등 주요 방송사와 다수의 IT 기업들이 입주했다.

 

월드컵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기점으로 혐오 시설이었던 난지도가 생태와 첨단 산업, 그리고 미디어 문화가 공존하는 매끄럽고, 거대한 '계획도시'의 전형이다.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 입주한 한 방송 제작사 PD는 격세지감을 논하는 것조차 낯설어했다.

 

그는 "사실 MBC와 YTN이 들어온 이후에 입사해서 ‘이전의 상암’은 잘 모른다"며 "과거에는 그냥 쓰레기 산이었다고들 하는데, 공원도 잘 되어 있고 맛집도 많아 지금은 그런 과거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신촌'의 쇠락과 '홍대'의 부상, 그리고 상업화

 

마포구의 문화적 지형도는 인접한 서대문구 신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청년 문화의 중심지였던 신촌이 지나친 상업화와 임대료 상승을 겪자, 가난한 예술가와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고 한적했던 마포구의 홍익대학교 인근으로 이동했다.

 

이들이 조성한 라이브 클럽, 인디 밴드 공연장, 독특한 화실과 공방은 '홍대 앞'만의 전위적이고 독자적인 문화 생태계를 구축했다.

 

1990년대 중후반 '드럭(Drug)'과 같은 라이브 클럽이 성행하며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1세대 인디 밴드가 태동했고, 거리 곳곳에는 실험적인 그래피티와 예술 퍼포먼스가 넘쳐났다.

 

2000년대 초반 시작된 '클럽 데이(Club Day)'는 홍대를 단순한 대학가를 넘어 춤과 음악, 해방감이 넘치는 한국 서브컬처의 성지로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성공은 역설적으로 거대 자본을 유입시키게 된 기폭제가 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앞이 내외국인이 즐겨 찾는 필수 관광 코스로 부상하면서 대형 자본이 유입되었고, 임대료가 급등했다.

 

 

현재 홍대 주요 거리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의류 브랜드, 클럽이 점령했으며, 초기 홍대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했던 인디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속화됐다.

 

홍대 정문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옛날부터 사람이 많긴 했지만, 특히 금요일에는 걸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며 "상권이 활발한 것은 좋지만 오물과 쓰레기, 취객들의 소음 등으로 인해 고충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은 외국인이 한국 사람보다 더 많다고 느낄 정도로 외국인 방문객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 달동네의 변신, 아현뉴타운과 '마용성'의 탄생

 

마포구의 변화를 이끄는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한 주거지의 재편이다. 과거 아현동과 염리동 일대는 낡은 주택들이 언덕을 따라 빽빽하게 들어선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이자 '달동네'였다. 좁은 골목길과 노후화된 기반 시설은 주거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주원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아현뉴타운' 사업은 이 지역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낡은 주택들이 헐린 자리에는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마래푸)'를 비롯한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입지에 쾌적한 신축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자 고소득 직장인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는 마포구가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불리며 강북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정비 사업의 열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1986년 준공된 3천700여 세대 규모의 성산시영아파트는 최근 재건축이 확정돼 최고 40층 높이의 랜드마크 단지로의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공덕동과 마포대로 일대는 도시 정비형 재개발을 통해 업무와 주거가 결합된 복합 도시로 진화하며 마포구의 스카이라인을 높이고 있다.

 

 

아현동 일대에서 15년 넘게 부동산을 운영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지역의 극적인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언덕배기에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옥이 많아 마을버스 의존도가 높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하지만 마포, 공덕을 시작으로 동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광화문이나 여의도가 가깝고, 한강변이다 보니 수요가 폭발하면서 집값이 강남 못지않게 뛰었다"고 밝혔다.

 

마포구는 홍대와 상암으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적 역량과 아현·성산동 일대의 주거 환경 개선이 맞물려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을 이룬 자치구다.

 

문화적 팽창이 가져온 상권의 변화와 대규모 정비 사업이 가져온 주거지의 변신은 마포를 '살고 싶은 도시'이자 '찾고 싶은 도시'로 만들었다.

 

앞으로 마포구의 과제는 화려한 마천루의 그늘에 가려질 수 있는 원주민의 재정착률을 높이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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