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의미의 변동불거(變動不居).
최근 교수신문이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2025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 1위를 차지한 단어로, 올해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새해 벽두부터 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 체포 및 탄핵 심판, 그리고 파면이라는 시련과 맞닥뜨렸고, 이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3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한 관세 협상 마무리 등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왔다.
한편, 뼈아픈 사건·사고도 있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 청년층을 대상으로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 급기야 한국 대학생이 고문·살해되면서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문화예술계는 K-컬처가 공연, 문화유산 등으로 영역을 거침없이 확장한 나날이었던 반면, 한국 연극·영화계를 지탱해온 거목들과 이별하는 슬픔의 시간도 가졌다.
◆ 첫 현직 대통령 체포...만장일치 파면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결국 체포·구속된 뒤 파면됐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1월 15일 한남동 관저에 진입해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체포에 성공했고, 검찰은 26일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윤 전 대통령 구속이 결정되자, 1월 19일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해 건물과 집기를 부수고 경찰을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본격화하고, 탄핵 찬반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헌재는 4월 4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 '3특검' 국회 통과 및 수사 착수
지난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시나리오와 재임 기간 중 벌어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내란특검·김건희 특검·순직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이 7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해병특검은 채해병 순직사고와 관련한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의혹'을 밝혀냈고, 김건희특검은 부인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을 만방에 공개했다.
내란특검이 12월 14일 총 27명을 기소하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윤 전 대통령은 계엄-탄핵-수사에 이어 법원의 시간을 맞게 됐다.
◆ '정권교체' 이재명 정부 출범…국가 정상화 매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파면 여파로 치러진 6·3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49.42%의 득표율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41.15%)를 누르고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7년 19대 대선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조기 대선을 맞닥뜨린 민심은 3년 만에 다시 정권 교체 카드를 선택했고,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 이름 아래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 국가 정상화를 최우선으로 삼고 '성장과 회복'에 집중했다.
내란 청산과 개혁 작업에 드라이브를 걸며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을 통해 전방위 수사가 펼쳐졌고, 이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구속기소 되면서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최초 사례를 남겼다.
◆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비상계엄 여파로 냉각 상태였던 민생경제만큼 정상외교 회복에 집중한 이재명 정부는 경북 경주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전력을 다했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행사인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특히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외교의 완전한 국제무대 복귀를 선언하는 등 각국 정상의 호평이 이어진 가운데 성공적으로 마쳤다.
회원국 정상들은 APEC에서 무역·투자, 디지털·혁신, 포용적 성장 등 핵심 아젠다를 담은 '경주 선언'을 채택했고 인공지능(AI) 및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 의지도 확인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1천700여명의 국내외 글로벌 최고경영자(CEO)가 머리를 맞댄 'APEC CEO 서밋'도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 대통령을 만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공급을 약속했고, 이를 계기로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치맥 회동'을 갖는 등 관계도 돈독히 다졌다.
◆ 한미 관세 협상 타결…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
'국익중심 실용외교'를 내건 이재명 정부는 최고의 난제로 꼽혔던 한미 통상 협상에서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3천500억달러의 대미투자를 약속하며 최종 합의를 도출했다.
정부는 10월 말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최종 타결하고 한국의 원자력(핵)추진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했다.
이러한 내용은 한미 정상 간 합의사항을 담은 '팩트시트'를 통해 공식화됐으며, 한미 양국은 7월 합의한 대로 미국의 대한국 상호관세를 4월 예고됐던 25%에서 15%로 낮추고, 핵심 수출 품목 중 하나인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대신 한국은 총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안보 분야에서는 한국의 숙원이었던 핵추진잠수함 도입 승인이라는 성과가 거뒀으며,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봉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미국의 지지도 얻어냈다.
◆ 이재명 대통령 재판 연기 결정...여야 충돌
지난 11월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항소 포기를 결정하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일선 검사장과 지청장들이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낸 데 이어, 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촉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의 의견이 반영된 결정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독립성 훼손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대장동 사건은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민간업자들이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유착해 특혜를 받은 것은 물론, 공공에 돌아가야 할 이익을 사유화한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비리 의혹 사건을 말한다.
대장동 사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두 가지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정권이 관여했다"며 '대통령 탄핵' 카드까지 꺼내들었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 정당' 공세를 퍼부으며 외압 의혹을 일축했다.
◆ 78년 만에 문 닫는 검찰청…사법부 위상 저하 우려
1948년 창설 이후 범죄 수사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검찰청이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검찰청 폐지와 함께 법무부 장관 소속의 공소청과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각각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9월 개정안이 시행되면 검찰(공소청)은 직접 수사 개시를 할 수 없고,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만 가능해진다.
후속 논의과정에서 보완 수사권마저 사라지는 경우, 송치된 사건도 수사할 수 없고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만을 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신설되는 중수청을 통해 수사 기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축적된 노하우와 인적 자원의 유실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캄보디아 범죄단지 대학생 고문·살해 사건
8월 8일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의 한 차량 안에서 한국인 대학생 박모 씨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납치·감금이 벌어진다는 소식은 종종 알려졌으나, 대학생의 첫 사망 소식이었고, 범죄단지에 감금된 채 강제 마약 투약은 물론 고문 등 협박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이 알려지며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전국에서 쇄도했고, 이를 계기로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됐던 한국인 64명이 전세기를 통해 송환됐다.
캄보디아 사례와 같은 초국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11월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총회에서는 한국 경찰청이 제안한 초국가 범죄단지 공동 대응 결의안이 채택됐다.
◆ '케데헌'부터 신라금관까지…'글로벌 스탠더드' K-컬처 열풍
K-컬처가 K팝과 드라마라는 '쌍두마차'를 넘어 장르와 국경, 시대를 초월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한 해였다.
지구촌 곳곳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속 한국 문화에 열광했고, 미국 브로드웨이는 한국 창작 뮤지컬에 최고 권위를 부여했다.
K팝 걸그룹이 악귀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는 케데헌은 누적 3억뷰를 돌파하며 넷플릭스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 6월 미국의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에서 6관왕을 차지하며 K-뮤지컬의 새 역사를 썼다.
드라마 분야에서는 이정재와 이병헌이 주연한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시즌3으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경주에서는 1천500년 전 신라 금관을 보기 위한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 이순재·김지미·윤석화 등 한국 연극·영화계 '거목' 별세
현역 최고령 배우로 무대에 섰던 이순재,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원로 배우 김지미에 이어 ‘영원한 아그네스’로 기억되는 배우 윤석화까지 세상을 떠나며 문화예술계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한국 연극·방송사의 산증인이었던 '천상 배우' 이순재는 지난 11월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오가며 70년 가까이 활동한 그는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현역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르며 마지막까지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역시 12월 향년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50~90년대를 아우르며 700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한 그는 배우 겸 제작자로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1세대 연극 스타' 윤석화는 지난 19일 오전 9시 50분께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가족과 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수년간 악성 뇌종양과 사투를 벌여왔다.
【 청년일보=안정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