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미국발(發) 관세 폭탄, 고물가·고환율, 내수 부진 등 올해 한국 경제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도 형용이 안 될 만큼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격랑에 휩싸인 한국 경제로 재계는 비상경영 체제 돌입, 희망퇴직 단행, 구조조정 가속화 등 사활을 걸었지만 여전히 경영 불확실성이 잔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내년에도 경제상황을 한 치 가늠할 수 없지만 재계는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丙午年) 새해를 맞아 숨 가쁘게 달릴 채비를 마쳤다.
◆ '사법 리스크' 족쇄 벗은 이재용 회장…뉴 삼성 재건 드라이브
지난 7월 대법원은 '부당합병·회계부정' 상고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무죄를 선고했고, 이 회장은 10년째 묵은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냈다.
앞서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내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된 바 있다.
지난해 2월 1심에 이어 올해 2월 2심에서도 이 회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또한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 장충기 전 차장 등 전직 임원 13명도 모두 무죄를 확정받았다.
재계 안팎에선 그동안 경영 활동의 족쇄로 작용해 온 장기간 사법리스크가 '뉴 삼성' 비전 실현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중장기적 전략 마련을 저해한 건 물론, 굵직한 현안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웠고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된 만큼 내년 광폭 경영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 APEC CEO 서밋 성공적 개최…젠슨 황·이재용·정의선 깜짝 '치맥' 회동
지난 10월 경북 경주에서 개최된 '2025 APEC CEO 서밋'이 역대 최대 규모 참가자, 최다 세션(프로그램), 최장 기간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번 서밋에는 역대 최대인 총 2천224명이 참가했다. 경제계에서는 713개 기업에서 1천852명이 참석해 작년 페루 CEO 서밋 보다 약 200여명, 2년 전 미국보다 약 460여명 많은 참석자를 기록했다.
올해 주제는 'Beyond Business Bridge'인 3B로, 경계를 넘어(Beyond), 혁신적 기업 활동을 통해(Business),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자(Bridge)는 비전을 담았다.
특히 이번 서밋 기간에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AI 대부'로 알려진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였다. 2010년 이후 1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황 CEO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근에 위치한 깐부치킨 매장에서 이른바 '치맥회동'(치킨+맥주)을 가졌다.
취재진뿐 아니라 시민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인산인해를 이뤘고, 이들은 4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치킨과 생맥주, 이어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 러브샷을 연출하며 관심을 끌었다.
◆ 최태원-노소영 '세기의 이혼' 대법 결론…1.4조 재산분할 파기환송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불리며 재계 2위 SK그룹의 운명을 가를 수 있었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10월 재산분할을 다시 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천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다만 위자료 액수 20억원에 관해서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해 판결을 확정했다.
또한 최 회장의 상고를 받아들여 SK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은 뇌물로 보인다면서 불법 조성한 자금을 재산분할의 근거로 삼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2심 판결이 인용돼 확정됐을 경우 최 회장은 1조4천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단기간에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SK㈜(지분율 17.9%)을 대규모로 처분해야 했고, 이는 SK그룹의 지배구조 불안정과 경영권 위협을 초래하는 심각한 리스크였다.
그러나 이같은 파기환송 결정으로 2심 판결의 효력이 사라지면서 최 회장이 1조원대 현금을 급하게 조달해야 할 압박이 해소됐으며, 법조계 내에선 파기환송심에서 재산분할액은 1심 수준(665억원) 또는 그보다 약간 증가한 수준으로 책정될 것이란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 누리호 4차 발사 성공…'뉴 스페이스' 시대 개막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가 지난달 27일 4차 발사에 성공해 탑재위성들을 계획된 궤도에 안착시켰다. 이번 발사에는 민간 기업들이 발사체 제작 등 에 참여하며 민간 기업이 우주 관련 기술, 서비스, 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의 서막을 열었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 따르면 누리호는 4차 발사 후 정해진 비행 계획에 따라 모든 비행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발사 당시 발사체에 실린 큐브위성 12기는 모두 지상국과 교신에 성공했다.
이번 발사는 민간 기업의 참여폭이 확대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민간 체계종합기업으로 발사체의 제작·조립을 총괄하고 항우연 주관의 발사 운용에도 참여해 처음으로 민관이 공동으로 준비했다.
사천시에 따르면 사천 지역의 주요 기업들은 발사체 제작을 맡아 힘을 보탰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연료 및 산화제 1단 탱크 제작과 차세대 중형위성 3호 개발을 담당했다. 방위산업 제품과 함께 우주발사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두원중공업은 연료 및 산화제 2·3단 탱크 제작을 맡았다.
항공기용 날개와 동체 부품 제조업을 주력으로 하는 에스앤케이항공은 로켓 동체, 엔진 지지 구조물, 동체·탱크 연결부를 제작했다. 항공기용 부품·장비 생산업체인 카프마이크로는 발사체 내부의 신경망에 해당하는 전기 커넥터와 와이어 하니스 제작을 수행했다. 항공기 부품 및 관련 제품 도매업을 하는 지브이엔지니어링은 발사체 단열재를 제작했다.
이처럼 누리호 4차 발사에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여러 기업이 제작·조립 총괄, 발사 운용, 발사체·위성·각종 부품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 발사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 美 조지아주 한국인 무더기 구금 '사상 초유' 사태
지난 9월 미 정부 당국이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을 급습해 3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체포·구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현장에서 450여명을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했다.
구금된 한국 국적자는 300여명으로,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과 HL-GA 배터리컴퍼니 설비 협력사 직원 250여명 등이었다.
이곳은 2023년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설립한 HL-GA 배터리컴퍼니 건설 부지다. 양사는 각각 50%씩 지분을 투자해 총 43억달러(약 6조원)를 투입했으며, 당초 올해 말까지 완공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는 구상이었다.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 대부분 비이민 단기 상용비자(B-1)나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발급받은 것으로 전해졌고, 재계에선 구금 사태를 계기로 비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금된 이들은 일주일만에 석방돼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했다.
◆ "노란봉투법에 상법 개정안까지"…반(反)기업 규제 강화에 재계 '속앓이'
지난 9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 정당 의원들의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9일 공포됐다.
6개월 유예기간을 거친 뒤 내년 3월 10일 본 시행 예정이지만 경영계는 해당 법안을 두고 근심이 가득하다. 노사관계 대혼란과 산업경쟁력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란봉투법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업체 노조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넓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상법 개정안 역시 재계에선 '기업 옥죄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1차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 주총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아 국회를 통과했고, 2차 개정안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을 담은 내용이 국회를 통과했다.
자사주 의무 소각이 골자인 3차 상법 개정안이 발의된 가운데 재계에선 적대적 인수·합병(M&A) 노출 우려 등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 트럼프發 '관세 폭탄'에 산업계 시름…완성차 업계 '애간장'
올해 국내 산업계는 미국발 '관세 폭탄'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 중에서도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계가 관세 영향에 노출되면서 애간장을 태웠다.
특히 대미 수출 품목 1위인 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었으나 지난 4월부터 25% 관세율을 부담해왔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정부는 일본·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내리는 조정을 확정했지만 한국만 답보 상태였다. 한미 양국은 7월 말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대미 투자방식과 이익 배분 등 세부 협상에서 양국간 교착상태를 보이면서 합의된 관세율을 적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와 증권가 안팎에선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 악화는 물론 자칫 현 수준의 관세가 지속될 경우 현대차·기아가 매달 천문학적인 관세 부담 비용을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후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확정됐고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완성차 업계는 일본과 유럽 자동차 회사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출항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공식 출범했다. HD현대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모든 합병 절차를 완료하고 이달 1일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통합을 바탕으로 오는 2035년까지 매출 37조원을 달성해 세계 1위 조선사로서의 위상을 갖출 계획이다.
최근 세계 선박 건조 시장에서는 한국의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자국 내 1·2위 대형 조선사 간 합병을 완료하는 등 시장 재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HD현대는 지난 8월 두 회사의 합병으로 양적·질적 대형화를 추진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HD현대는 통합 HD현대중공업이 미국의 조선업 재건 계획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와 방산 분야에서 사업 경쟁력을 대폭 높일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HD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함정 건조 기술 역량에 함정 건조에 적합한 HD현대미포의 도크와 설비, 인적 역량을 결합한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친환경 신기술 확보에도 박차를 가한다. 양사의 연구개발(R&D) 및 설계 역량을 결집해 중형선에서 대형선으로 신기술 적용을 확장, 초격차를 유지하며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할 계획이다. 최근 북극권 개발로 수요가 커지고 있는 쇄빙선 등 특수목적선 시장에서도 양사가 보유한 다양한 실적을 통합해 시장 진입 기회를 확대할 방침이다.
◆ 정기 사장단 및 임원인사 마무리…세대교체 본격화
국내 주요 기업 정기 사장단 및 임원인사가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올해 재계 인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대교체'로 요약된다.
대표적으로 '범현대가' 3세인 정기선 HD현대그룹 수석 부회장(43세)이 지난 10월 사장단 인사를 통해 회장으로 승진하며 '80년대생 총수' 시대를 열었다. 정 회장은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공동 대표도 맡아 최근 실적이 부진한 건설기계 사업의 위기 극복과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에 나선다.
또한 재계 전반에선 40대 차세대 리더 발탁이 두드러졌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상무 신규선임 대상자 중 40대의 비율은 2020년 24% 수준에서 올해 절반 가까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상무 초임의 평균 연령도 올해 처음 40대로 진입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임원인사에서 부사장 51명, 상무 93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6명 등 총 161명이 승진했으며, 이 가운데 40대 부사장은 11명이 배출됐다.
SK그룹은 신규선임 임원 85명 가운데 60% 이상(54명)이 40대로 구성됐다. 신규선임 임원의 평균 연령은 만 48.8세로, 지난해 만 49.4세보다 젊어졌다.
◆ "서울이냐 부산이냐 그것이 문제로다"…표류하는 HMM 부산 이전 논의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이 부산 이전 논의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부는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추진 중이다. 해양수산부는 이달 들어 세종에서 부산으로 이전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이 이달 5일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본사 이전을 두고 HMM 내부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 HMM 육상노조는 이달 초 약 800명의 노조원에게 부산 이전 반대 피켓을 배포했다.
앞서 HMM 육상노조는 지난달 21일과 28일 사측과 내년 임금교섭 및 단체협상(임단협) 협상을 위한 교섭 자리에서도 부산 이전 이슈가 거론되자 결사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HMM은 민간기업이지만 산업은행이 지난 9월 말 기준 지분 35.42%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35.08%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지분의 70.5%로 주요 의사결정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HMM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의 의지에도 HMM 부산 이전은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노조 등 내부적인 반발이 더욱 심화하는 데다 직접 설득 작업을 진행하던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통일교 의혹에 연루되며 사임해 추진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