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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여권의 친기업적 행보?···기업 옥죄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미 정상회담 자화자찬 불구, 기업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었다는 평가
정부·여당 쏟아낸 법안,기업 처벌에 초점···최우선 과제는 반기업 정서 불식

 

【 청년일보 】 정부는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설명하는 3개 부처 합동 브리핑을 가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그리고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미 양국이 핵심산업 분야에서 경제협력 파트너 관계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특히 44조원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투자 결정은 미국 시장을 선점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미 백신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백신 생산 능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추진 동력이 확보됐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이 남북간 대화와 협력에 힘을 실어주었다고 강조했다.

 

3개 부처 합동 브리핑은 전날 밤 9시를 넘어 공지될 정도로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 지시 때문이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직후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방미 성과를 경제협력, 백신,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 분야별로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화 하라"고 말했다. 

 

서둘러 마련된 대(對) 국민 홍보용인 만큼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6·25전쟁 영웅인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반응이 많다.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쪼그려 앉자 문재인 대통령도 따라 쪼그려 앉은 채 94세의 노병과 기념촬영을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클라이맥스는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6.25 참전용사에게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태영호 의원은 "문 대통령이 기획한 것이라면 그는 대단한 책략가"라는 말도 보탰다. 그 만큼 의미가 컸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거론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 대표단에 '탱큐'를 연발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할 것이다. 약 25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삼성, SK, 현대 등에서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며 “(투자를 결정한 한국) 기업 대표들이 여기 계신 것으로 안다.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주실 수 있나”고 말했다.

 

이에 최태원 SK 회장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인들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장내에서 박수가 쏟아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고맙다는 뜻의 땡큐를 세 차례나 연발했다.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 보따리를 안긴 것에 대한 감사 표시일 것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경제와 첨단기술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시키려는 것은 한국 정부가 예뻐서가 아니다. 한국 기업들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향방을 좌우할 4차 산업혁명, 그 중에서도 핵심인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란 우군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가 자화자찬하며 내세운 방미 성과는 기업들의 주머니와 능력에서 나온 것이다. 기업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숟가락 얹기는 최근 발표한 'K-반도체 벨트 전략'에서도 나온 지적이다. 정부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지원책이라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비용 대부분은 기업들이 떠안는 구조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10년 투자 규모는 510조원인데, 세제 지원을 제외한 정부 투자는 1조~1조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00억 달러(56조7000억원)의 돈이 필요하다며 의회에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산업에 500억 유로(68조4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모두 세제 지원은 별도다.

중국은 한 술 더 뜬다. 반도체 기업에 법인세 면제 혜택을 주는 동시에 국영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2025년까지 1조 위안(17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하루가 멀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부담은 기업들에게 떠넘기는 우리나라 상황과는 천양지차다. 정치권에서는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하기로 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반도체 산업 하나만 경쟁력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공학과 바이오산업, 이차전지와 소재, 빅데이터, 인공지능(AI), 6세대(6G) 이동통신 등 국가의 명운이 걸려 있는 산업이 하나 둘이 아니다.  모두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며, 특히 국가의 지원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4년 동안의 행적을 뒤돌아보면 이는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재벌 개혁은 경제의 투명성은 물론 경제 성과를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며 “엄정한 법 집행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없애고,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장을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 경제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기반”이라며 “채용비리,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갑질 문화 등 생활 속 적폐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재벌 개혁 작업에 속도가 붙었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등 이른바 '기업 규제 3법'이 통과된 게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집단소송제, 징벌적손해배상제 등 더 '센 놈'도 있다. 이른바 '기업 징벌 3법'이다. 별칭 그대로 이들 법안은 모두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올들어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 재해가 발생한 사업주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게 골자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정책 효과는 물론 과잉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11개 경제 부처가 소관하는 경제 관련 법률 조항 중 83% 이상이 양벌 규정이다. 대다수 처벌 조항이 법인과 사업주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인이 불분명한 사고가 터져도 사업주 등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먼지 털기식 처벌 그 자체다.

 

집단소송제의 경우 이를 먼저 도입한 미국에선 기업에 대한 협박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받고 있다. 징벌적손해배상제 역시 기업에 막대한 소송 비용과 행정 제재, 민·형사 처벌까지 이뤄져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라도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중소기업이라면 당장 도산할 우려가 크다.

 

"미국, 중국 등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이들 나라에 없는 규제는 없어야 한다"는 말은 오히려 한가하게 들린다. 정부와 여당이 쏟아낸 온갖 기업 규제로 발목이 잡혀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 같은 행보는 반기업 정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반기업 세력이 갖고 있는 정서에 영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기업 정서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과거 횡행했던 '블랙기업'과 '사법불신' 때문이다. 블랙기업이란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말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역시 기업 또는 사업주와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비판 의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도(度)를 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다. 반기업 정서의 뿌리가 깊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권력과의 유착, 그리고 부정부패 덕분에 무한 경쟁에서 벗어나 아주 손쉽게 기업을 일구고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정책에 따라 기업 지원에 세금이 투입되는 것에는 인색하면서 정작 기업과 기업인들이 내는 천문학적인 세금, 그리고 기업 활동으로 인한 경제 효과는 외면한다. 

 

특히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개념에 취약하다.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 등 경쟁력을 키워 성장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적다. 독점이나 담합 같은 구조적 우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여기에 선(善)을 가장한 이념적 편견을 덧씌운 것이 바로 특정 정치 세력이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반시장적 규제를 양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기업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철 지난 프레임까지 씌운다.

 

기업의 가장 큰 덕목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고용을 늘리며, 성실히 세금을 내는 것이 바로 기업의 몫이라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은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위한 ESG 경영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이 잇따라 산업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규제를 쏟아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달라진 풍경이다. 이 때문에 '친기업 쇼'라는 말도 나온다.

 

여권의 대선 주자들이 친기업적 행보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기업 규제와 징벌 완화를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부터 귀담아 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 이면에는 한국 기업의 주머니와 능력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제라도 반기업 정서 불식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앞장설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일자리 창출이란 난제를 푸는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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