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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실패 인정 않고 '통계 분식'으로 눈속임하는 일자리 정책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강제 정규직 전환 등 소득주도 성장 부작용 갈수록 커져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 훼손···정책 실패를 정권 실패로 인식하며 '허상'과 싸워

 

【 청년일보 】 일자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일자리 정책을 중요하게 제시하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등 국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 바로 일자리 부족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해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질(質)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며, 불안정·저소득 일자리의 늪에 갇힌 사람들에게 고용과 소득의 안정성 중 한 가지라도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것도 작동되지 않고 있다. 

 

시계(時計)를 2017년으로 되돌려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그해 1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쏟은 예산만 22조원이다. 이는 연봉 2200만원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그 많은 예산을 4대강 사업 같은 '쓸데 없는' 곳에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쏟아부었으면 일자리 100만개는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4대강 사업의 정확한 명칭은 4대강 정비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유역을 정비한 것으로 주요 국정 사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륙 수운으로 잇는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지지층도 한반도 대운하 공약 만큼은 부정적이어서 대통령 당선 후 4대강 사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는 보수, 진보 정권에 따라 긍정과 부정을 오가고 있다. 다만 유엔환경계획(UNEP)은 4대강 사업이 기후변화로 인한 반복적 홍수에 대응하는 방안이며, 수자원 확보와 함께 생태계 복원에도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 정책을 총괄하겠다며 현황판도 설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일자리 현황판을 소개하면서 "이건 시연이 아니라 대통령이 상용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부연했다.

 

촛불집회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운(運)도 따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성장률은 호조를 보였고, 재정도 비교적 튼튼했다. 부동산 역시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활력을 찾는 것이 주요 관심사일 정도로 모든 것이 '장밋빛'처럼 보였다.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사람이 먼저다' 같은 그럴듯한 정치적 구호만으로 유권자를 들뜨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구호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무엇을 하겠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현황판까지 만들었지만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급속하게 오르자 자영업자들은 종업원을 내보냈다. 차고 넘치던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얻기 어렵게 됐다. 일자리 감소를 '통계 잘못'으로 몰아 통계청장을 교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줄어드는 일자리가 늘어날리 없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이다.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나 정부 재정 등 다른 부분의 소득 일부를 이전한 것에 불과하다. 성장이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상은 분배인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근로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이면 소비가 증대되면서 경제 성장을 유도한다는 주장이

골자다. 이 때문에 '낙수효과'를 신화(神話)에 불과하다며 쓰레기통에 버렸다.

 

낙수효과는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의 부(富)를 먼저 늘려주면 경기가 부양돼 결국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이다. 특히 이 같은 메커니즘은 총체적인 국가의 경기를 자극해 경제 발전과 국민 복지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다줄 '동화같은 미래'만 보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톱니바퀴처럼 소비는 물론 생산과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藥)이라도 환자에 맞지 않으면 독(藥)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2배이자 그리스, 터키, 멕시코에 이어 세계 4위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영세해 종업원에 비해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을 직격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작용에 대한 대처 방안이 마련돼 있다고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소득주도 성장의 또 다른 정책인 강제 정규직 전환도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매월 봉급을 줘야 하는 고정 일자리, 즉 정규직은 경기가 활황일 때는 보배지만 불황에는 저승사자와 같다. 이 때문에 쉽게 고용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기업이 땅 파서 장사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매월 나가야 하는 고정 인건비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번듯한 일자리(good job)는 물론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는 대부분 민간 영역인 기업에서 나온다.

 

기업은 정부가 복지 정책을 펼 세금을 내고, 국민이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를 만들며, 해외에서 국가 브랜드를 높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각종 규제로 기업을 옭아맸고, 이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조에 편향된 정책 운영의 산물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J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기도 하는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아직도 기업은 악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들의 몫을 빼앗아 착한 노조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노동자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조직화한 노조의 강한 목소리에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는 불공정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기식 일자리 늘리기에 집착하는 것 역시 소득주도 성장과 관계있다. 그래서 2017년 이후 올해까지 예산으로 122조원을 쏟아부었다. 4대강 사업을 다섯 번 하고도 10조원 이상 남는 규모다. 

 

그러나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만 양산하는 등 일자리 성적표는 참담한 수준이다. 공공 일자리가 민간 일자리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일자리 사업의 지속성을 뜻하는 고용 유지율은 2019년 51.3%에서 지난해 37.8%로 크게 떨어졌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는 미흡하다는 의미다. 

 

더욱 큰 문제는 그 같은 단기 일자리마저 부실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정부 일자리 사업 145개를 평가한 결과 3개 중 1개꼴로 개선 또는 감액이 시급한 것으로 지난 8일 확인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진행된 정부 일자리 사업 145개에 대해 전문가 위원회 등을 거쳐 등급을 매긴 결과 우수 14개, 양호 81개, 개선 필요 36개, 감액 14개로 나타났다. 개선 필요와 감액이 34.5%인 50개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며 줄기차게 낙관론을 폈다. 하지만 가짜 일자리를 양산하는 엉터리 고용정책으로 천문학적 세금을 낭비한 사실을 주무 부처가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사실 정부 일자리 사업의 상당수는 통계 분식(粉飾)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엉터리 수준이다. 거죽만 발라 꾸몄다는 것인데, 불 켜진 빈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소등을 하는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가 대표적이다. 라텍스 침대 생활방사선 검출 측정 요원, 제로페이 홍보 안내원 등 무슨 일을 하는지 모호한 일자리도 적지 않다.

 

특히 노인 일자리로 마련한 교통안전 시설물 조사원,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폐비닐 등을 줍는 농촌환경 정비원 등은 대부분 할 일 없이 시간만 때우는 실정이다.

 

세금 퍼붓는 가짜 일자리를 빼면 고용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지난달에도 산업의 중추인 30대와 40대 일자리가 각각 6만9000명, 6000명 감소한 반면 60대 이상은 45만5000명 늘었다. 20대 일자리는 약 11만개 증가했지만 음식배달, 건설현장 근로 등 임시직이 대부분이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4.3%로 여전히 최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과 강제 정규직 전환 등 소득주도 성장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해치고 있다는 숱한 지적에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소득주도 성장을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로 바꾸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이는 정책 실패를 정권 실패로 보는 그릇된 시각 때문이다.

 

관료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정책 실패 인정을 반(反)개혁 세력에 대한 굴복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이 같은 인식 아래에서는 정책의 전환이나 수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반개혁 세력이란 실체가 없는 허상(虛像)이다. 굳이 있다면 시장(市場)이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는 시장과 싸우면서 국민의 삶을 더욱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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