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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연성독재, 국민 편가르기, 그리고 부동산 정치

적과 동지 이분법적 접근은 연성독재 특징, 종부세 공시가 상위 2% 변경 대표적
25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부동산 정치' 때문, 국민 편가르기의 끝은 '망국열차'

 

【 청년일보 】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세계 석유 매장량의 5분의 1을 갖고 있다. 질 좋은 석탄, 철광석, 보크사이트에 금광도 수두룩하다. 다이아몬드도 나온다. 

 

자연환경도 뛰어나다. 서쪽은 만년설이 덮인 안데스 산맥이 자리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아마존 정글이 풍부한 산소와 물을 공급해 준다. 농업에 안성맞춤인 토질과 기후다. 북쪽으로는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다. 남미에서 가장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수백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미는 독립을 통해 20여개 국가로 나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백인인 스페인 사람과 원주민은 물론 다른 곳에서 유입된 인종이 섞이면서 다양한 혼혈이 발생한다.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물라토,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인 잠보가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무지개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는 무엇보다 통합이 중요하다. 하지만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거꾸로 갔다. 빈민에게는 영웅으로 불렸지만 백인과 중산층에는 독재자로 군림했다.

 

독재자는 국민 편가르기를 먹고 산다. 민족과 반민족,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등의 이분법을 들이밀고서 한쪽 진영의 선택을 강요한다. 강압 속에서 사람들이 한 쪽으로 쏠리면 재빨리 '다수'를 선점하고 국민을 참칭한다. 자기편을 전체 국민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이 같은 독재자의 모습이 대중독재(大衆獨裁)의 형태로 나타난다.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하지만 대중의 동의(同意)에 기초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중독재는 포퓰리즘을 앞세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뒤 여기서 나오는 수십~수백억 달러의 오일 머니를 국가 미래를 위한 경제개발 대신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사회개발 프로그램에 쏟아 부었다. 빈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다.

 

석유는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한다. 수출의 80~90%, 정부 수입의 절반 이상이 석유에서 나온다. 번영의 밑천이 될 수 있었던 석유는 차베스 대통령에 의해 포퓰리즘을 위한 정치적 자산으로 변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속내는 국민 편가르기다. 빈민 등 지지자들의 친정부 시위와 국민투표를 활용해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고, 입법부·사법부까지 장악하며 장기집권의 정치적 야심을 채웠다. 이 같은 국민 편가르기는 볼리비아에서도 나타난다.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가 주인공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백인과 중산층을 적(敵)으로 규정했다. 인구의 55%를 차지하는 원주민 우대 정책을 펼쳐 정부와 공기업 요직을 원주민 출신으로 채웠다. 원주민 깃발을 만들어 공식 국가 상징으로 사용했다. 물론 원주민 표(票)를 위한 포퓰리즘도 대거 동원됐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6년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 이후 통신, 전기, 철도를 차례로 국유화했다. 개인 사유지 보유 한도를 5000헥타르로 제한하고, 그 이상의 사유지는 국유화했다. 은퇴연금을 국영화해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58세로 낮추었다. 연금 대상에 자영업자와 택시기사 등을 추가했으며, 수령액은 소득의 25%에서 62%로 올렸다. 최저임금은 모랄레스 대통령 재임 중 5배나 올랐다. 

 

베네수엘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로 집은 물론 일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무덤 옆에서 노숙하고 있다. 비참함의 끝을 달리고 있다. 남미 최빈국 중 하나인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은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로 결국 멕시코로 망명한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대중독재를 우리나라에서는 연성독재(軟性獨裁)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마디로 '부드러운 독재'라는 것이다. 연성독재는 연성 파시즘과 상통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에 따르면 연성 파시즘은 물리적 테러나 공권력의 겁박이 아닌 사법체계 교란, 정보 은폐와 조작, 선전과 선동을 통해 구축된다. 친정부 언론과 어용 지식인, 시민단체 등이 합세해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여론을 조작하면서 정권에 부역한다. 

 

연성 파시즘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접근인데, 문재인 정권은 국민 편가르기 또는 갈라치기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한다는 것이 윤평중 교수의 진단이다. 특히 정책 실패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편을 가른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일 의원총회를 열어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변경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 9억원 초과에서 공시가 상위 2%로 변경키로 했다. 양도세 비과세 기준은 거래 가격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물론 단서가 달려 있다. 양도차익 5억원까지는 현행 기준(공제 비율 40%)을 적용하고, 5억원이 넘으면 공제 비율을 차등 적용해 양도차익이 클수록 공제 비율을 줄이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거대 여당인 만큼 개편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종부세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특정 비율 과세 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지역별 아파트값 상승률에 따라 공시가 상위 2%가 변하기 때문에 해마다 종부세 납부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해 집값이 급락해도 공시가 상위 2%에 포함되면 종부세를 내야 한다. 특히 공시가 상위 2% 구간에 근접한 소유자들은 막판까지 대상 여부를 알기 어렵고, 대상에 포함될 경우 반발과 함께 소송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종부세 부과 대상을 공시가 상위 2%로 한정한 것은 전형적인 국민 편가르기란 비판이 나온다. 차익이 많으면 양도세를 많이 물리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가구 1주택자마저 부자로 낙인찍어 무주택 서민들의 분노를 달래주면서 선거에 활용하겠다는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실제 개편안을 주도한 김진표 부동산특위 위원장은 의총에서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89만표, 부산 43만표 차이로 졌다. 서울과 부산에서 100만표 이상 지면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의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경제나 민생이 아닌 정치와 표의 논리로 접근했다는 자기고백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단순한 오류로 볼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에 가까운 정책 비판과 대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실패가 뻔한 정책을 25차례나 내놓은 것은 '부동산 정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못 가진 자'가 '가진 자'보다 훨씬 많은 상황에서 갈라치기의 수혜자는 현재의 집권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정책과 법안마다 국민 편가르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자 와 서민을 갈라치는 것은 기본이다. 임대인 대 임차인, 대기업 대 중소기업, 강남 대 비강남 등 셀 수도 없다. 심지어 지난해 9월에는 의사와 간호사마저 편가르기를 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간호사들이 파업 의사의 짐까지 떠맡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발단이다.  

 

국민 편가르기나 갈라치기가 정권의 위기 모면과 선거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을 사분오열시키는 것이며, '망국열차'를 타는 지름길이다. 그 길의 끝에는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있을 수 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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