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보고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22번째 장소로,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이후 독자적인 디지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온 금천구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옷깃 금(衿)에 내 천(川)을 쓰는 지명은 시흥현의 옛 이름에서 유래했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로구에서 분리되기 전까지 이곳은 '구로공단'이라는 거대한 산업 유산의 한 축이었다.
실제로 G밸리는 구로구 구로동의 1단지와 금천구 가산동의 2·3단지가 중랑천과 경부선 철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어, 두 자치구는 태생적으로 산업적 정체성을 공유한다. 1964년 '수출산업단지개발조성법'에 의해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수출 국가산업단지라는 수식어는 두 구가 함께 짊어진 훈장이자 숙명이다.
2026년 현재 금천구는 40여 년간 지역을 물리적으로 단절시켰던 독산동 공군부대 부지 개발을 본격화하며 대규모 공간 개편에 돌입했다. 이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간혁신구역(화이트존) 선도사업'과 맞물려 서남권 자족 도시를 향한 구체적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독산동 공군부대 부지, 규제 걷어낸 '화이트존'의 실험
40년간 독산동 일대의 물리적 성장을 가로막았던 공군부대 부지는 서울시의 공간혁신구역 지정을 기점으로 서남권 경제 중심지로 재편된다.
서울시와 금천구가 수립한 기본계획안은 용도와 용적률 제약을 과감히 걷어내는 화이트존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군 시설 이전이라는 지역의 해묵은 과제를 첨단 산업 거점 구축과 연계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해당 계획안은 네 가지 핵심 목표를 담고 있다. 우선 분양주택 위주의 주거 공급을 꾀하되 청년과 가족, 어르신 등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다층적 주거 단지를 조성한다.
G밸리와 연계한 인공지능(AI) 및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첨단산업 거점을 구축해 자족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환경 측면에서는 녹지생태도심 구현을 목표로 개발 면적 내 충분한 녹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군 시설은 도심형 부대로 현대화해 장병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토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의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에 해당 부지가 포함되면서 사업 추진을 위한 강력한 정책적 동력이 확보된 상태다. 다만 고밀도 개발에 따른 시흥대로 일대의 상습 정체 해소를 위한 입체적 교통 대책 수립이 사업 완성을 위한 필수 과제로 관측된다.
구 관계자는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대규모 개발 가능한 부지인 공군부대 부지를 복합개발해, 서울 서남권의 핵심 경제 거점으로 도약하고 지역 위상을 한 단계 높일 것”이라며, “사업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 주거·업무·문화가 어우러진 금천형 기능집약도시 모델을 조속히 실현하겠다”라고 밝혔다.
◆주거 공급 확대와 인프라 정체의 딜레마
시흥동과 독산동 일대를 중심으로 한 주거 환경 정비는 획기적인 전환점에 서 있다.
금천구의 '2030 주거정비 실행계획'에 따르면, 시흥동과 독산동 일대 재개발·재건축 및 모아타운 사업을 통해 공급될 2만6천호에 공군부대 부지 개발 물량 8천호를 더해 총 3만4천호 규모의 주택 공급이 가시화되고 있다.
시흥대로 동측의 낡은 저층 주택가들이 현대적 주거 단지로 재편되는 과정인 반면, 광역 교통망 확충은 사업 지연의 늪에 빠졌다.
총사업비가 4조3천억원 규모로 재산정된 신안산선 복선전철은 설계 변경과 차량 수급 문제로 개통 시기가 2028년 하반기로 늦춰졌다.
여의도와 도심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핵심 동력이 약해졌고, 가산디지털단지역의 극심한 혼잡도 역시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1·7호선 환승 구간의 포화 상태는 G밸리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금천구청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금도 출퇴근 시간뿐 아니라 낮 시간에도 너무 차가 많다"라며 "인프라 개선 없이 아파트 공급만 늘어날 경우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 대란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부간선도로와 시흥대로 등 간선 도로망의 만성 정체는 주거지 진입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주거 공급 확대에 앞서 입체적인 교통 대책이 요구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식산업센터의 진화와 공급 과잉의 그림자
과거 제조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문화와 업무가 공존하는 복합 지식산업센터들이 들어서고 있다. 넷마블 신사옥인 'G-타워'는 저층부에 캐릭터 박물관과 공공 공원을 배치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독산역 인근의 'W-센터' 등은 스트리트형 상권과 공연장을 결합해 과거 삭막했던 공단 지역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산업센터 시장의 급격한 팽창은 위험 요소로 꼽힌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금천구 내 지식산업센터 공급이 지난 5년간 급증하며 공실률이 상승하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첨단 기업 유입 속도가 건물의 완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산업 거점으로서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의 빗장이 풀린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금천구는 이제 구체적인 선택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공간의 효율성과 삶의 질이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서울 서남권의 이 오래된 공업 지대가 내놓을 답을 지켜볼 시점이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