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소비자
"개인정보 유출은 국부 유출"...정치권-법조계 등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일성
【 청년일보 】 최근 국내 주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소비자 개인 정보의 유출을 중대한 '국부 유출'에 준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한편 기업의 근본적인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등 법적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9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쿠팡을 비롯해 G마켓 등 국내 유통업계를 선도하는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사들이 개인 정보 유출 사태로 곤욕을 겪고 있다. 우선 쿠팡의 경우 올해 6월부터 최근까지 약 3천370만명에 달하는 자사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개인 정보인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입력하신 이름, 전화번호, 주소), 일부 주문정보 등이 대거 유출됐다. G마켓에서는 지난 11월 29일 회원 60여명의 계정과 카드 정보 도용 의심 사건으로 모바일 상품권이 결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 금액은 한 사람당 3만원~20만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쿠팡의 경우 전 국민의 3분의 2 가량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지난 2일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 등에 출석을 요구, 긴급 현안에 대한 질의와 질타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 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이유는 두 업체 모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대표격 업체라는 점에서 피해 소비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생필품을 구매한다는 한 40대 소비자는 "쿠팡에서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해 G마켓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황당한 심정"이라며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이커머스는 대한민국에 없는 것인지 낙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사한 소비 패턴을 가진 또 다른 30대 소비자는 "개인 정보가 이른바 '공공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고 하지만, 믿고 사용했던 기업에 또다시 배신을 당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특히,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의 보안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등 데이터 기반 첨단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에 개인 정보 등이 실제 중요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대형 사이버 보안 업체의 한 전문가는 "개인 정보 유출은 과거처럼 보이스 피싱 등 단순 사기 범죄에 활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 그 자체를 플랫폼 구축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차세대 핵심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플랫폼 업체의 경우 개인 정보가 곧 회사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회사의 핵심 수익 구조를 결정하는 AI 알고리즘, 빅데이터 등의 구성을 위해 필요한 '메타 데이터'(구조화된 데이터) 구성에 있어 개인 정보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안을 '국부 유출'에 준하는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번 쿠팡, G마켓에서 발생한 개인 정보 유출과 도용의 결과가 추후 어떤 방식으로 국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칠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만약 경쟁 업체의 손에 데이터가 넘겨졌다면, 이 기업은 우리 기업이 축적한 메타 데이터를 아무런 노력 없이 그대로 활용하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플랫폼 기업의 핵심은 데이터 가공을 통한 효율적 알고리즘 확보, 플랫폼 구성인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인적·재정적 투자가 필수적인 데이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면 그만큼 정보를 빼앗긴 업체의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 정보 유출은 단지 보안 실패가 아닌 일종의 국부 유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업의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력한 법적 제재 방안을 마련,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재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위원회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기업 매출액의 최대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만약 이 법 조항이 적용될 경우 쿠팡은 약 1조2천억원(작년 매출 약 41조원 기준)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다만, 일부 정치권에서는 과징금을 규정하는 국내 법률이 해외 법규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느슨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2019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이용자 8천700만명의 개인 정보를 여론조사 기관에 임의로 유출한 페이스북(현 메타)에 약 7조3천517억 원(약 50억달러)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미국 통신업체 T모바일은 2021년 고객 약 7천660만명의 정보가 유출된 뒤 제기된 집단 소송에서 약 5천144억3천700만원(약 3억5천만달러)를 배상하기도 했다. 독일은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 기반한 연방정보보호법(BDSG)에 따라 중대 위반 시 최대 약 340억원(약 2천만유로) 또는 전 세계 연간 총매출의 4% 중 더 큰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연간 국내 매출이 약 113억2천980만원(1천만 싱가포르달러) 이상인 법인 등이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 정보의 보호, 수집, 사용 및 공개 등에 관한 규정을 어기면 연 매출의 10% 또는 약 11억3천300만원(100만 싱가포르달러) 중 더 큰 금액을 과징금 상한으로 두고 있다. 이에 비해 개인 정보 유출 보호에 관한 국내 법률은 행정적 관점에서 과징금을 가중하거나 심지어 감경하는 절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법조계 일각의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역시 이번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2일 열린 제52회 국무회의에서 "피해 규모가 3천400만건으로 방대한데도 사건이 발생하고 회사가 유출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며 "사고 원인을 조속하게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관계 부처는 해외 사례들을 참고해서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효적인 대책에 나서달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현실화를 촉구했다. 아울러 인공지능과 디지털 시대의 핵심 자산인 개인정보 보호를 소홀하게 여기는 잘못된 관행과 인식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점도 피력했다. 법조계와 소비자단체 전문가들도 개인 정보 유출에 비교적 관대한 국내법을 강화하고, 해외 주요 선진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고 있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소비자의 메타데이터가 하나의 큰 자산으로 취급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소 부합하지 않는 측면에 있다는 데 동의한다"며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처벌을 단순히 '과징금'과 경감·가중 여부에 초저을 맞추고 있는 국내법은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라고 짚었다. 그는 "해외 사례와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극 도입해 기업의 구조적 거버넌스를 자체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압박하는 게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에도 더욱 부합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측면에서도 단순히 일회성 과징금으로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귀책을 묻는 것은 다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내 한 소비자단체의 전문가는 "기업이 개인 정보를 단순히 소모품 취급하는 행태를 과감히 개혁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사건이 발생해도 '한번 돈 내고 말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지 않을, 기업의 존립을 걸고 소비자의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산업 스파이 등에 의한 해킹 시도를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다"면서 "다만, 기업이 이를 위해 충분한 인적·재정적 자원을 충분히 투입했는지에 따라, 처벌해야 할 부분은 확실히 처벌해 사태 재발을 막자는 취지로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한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늘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이달 17일 개최하는 안건을 의결할 계획이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