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잇단 정피아 망령에"...금융권, 유관기관장 전문성 논란 '재점화'
【 청년일보 】 금융 유관기관장 자리를 둘러싸고 정치권 출신 인사들의 잇따라 가세, 반복되면서 이른바 ‘정피아(정치+마피아)’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선 산업 전문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비영리 금융기관마저 정치권의 재취업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게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단지 관(官) 또는 정치인 출신이란 점이 문제라기 보다는 해당 조직의 업무 성격과 무관한 분야의 경력을 보유한 인사, 즉 비전문가가 보은성 인사 일환으로 기관장직에 오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금융권 등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신용정보협회는 최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고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 현재 후보군에는 유광열 전 서울보증보험 사장을 비롯해 윤영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병철 신한신용정보 사장, 이호형 전 IBK신용정보 사장 등 4명이 최종 후보로 선정돼 검증작업이 진행 중이다. 신용정보협회는 신용정보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국민은행·BC카드·하나카드 등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를 영위하는 주요 금융사들도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협회장 연봉은 약 2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중 윤영덕 전 국회의원의 후보 등록을 두고 업계 안팎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고, 광주에서 21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소속)을 역임했다. 조선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운동권 인사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했으나, 금융·신용정보 분야의 직접적인 실무 경험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 입문 전에는 정치외교 분야 연구 활동이 주를 이뤘다. 당초 신용정보협회장 자리는 금융 당국 및 업계 경력을 갖춘 후보 간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유광열 후보는 행정고시 29회로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SGI서울보증 대표 등을 지낸 금융 관료 출신이다. 이호형 후보 역시 행시 34회로 금융위 공정시장과장,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장, 은행연합회 전무를 역임했다. 이병철 후보는 신한신용정보 사장 출신으로 업계 경험을 갖췄다. 업계에서는 회추위원 5명 중 2명이 관(官)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정부 또는 정치권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용정보협회는 과거에도 정치권 인사가 수장을 맡은 전례가 있다. 전임 나성린 회장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전신) 소속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이 같은 흐름은 보험업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보험업계 대표 교육기관인 보험연수원 원장직은 최근 세 차례 연속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 맡으며 사실상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평가다. 2018년 정희수 전 의원을 시작으로 민병두 전 의원이 뒤를 이었고, 최근에는 하태경 전 의원이 19대 보험연수원장 후보로 단독 추천되며 선임이 사실상 확정됐다. 하 원장 역시 보험·금융 분야 전문 경력보다는 정치권 및 중앙정치 활동 이력이 중심이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전문 기관의 수장이 체급 있는 정치권 재취업 자리로 인식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사 CEO와 실무진 교육, 제도 혁신을 담당해야 할 기관에서 정치적 네트워크 기반 인사가 우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보험연수원뿐 아니라 생명보험협회 등 다른 금융 유관기관에서도 정권 또는 정치권과 연계된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며 비슷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 또는 정치권과의 친분을 기반으로 기관장 자리를 옮기는 ‘낙하산식 인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반복될수록 산업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유관기관들은 금융소비자 보호, 신용정보 관리, 산업 인력 양성 등 공공성이 강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활용 확대 등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관장의 전문성과 중립성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 출신 인사가 반드시 부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런 인사가 반복될 경우 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정책적 안정성과 산업 전문성 간 균형을 맞추는 인사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협회장 출신 평가에서 정치인들은 이름을 알리거나 업무를 크게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직 규모와 인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일을 늘리다 보면 직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타 금융 유관기관들도 차기 기관장 인선을 놓고 낙하산 인사에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예금보험공사 및 서민금융진흥원 노동조합도 일제히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인 가운데 예금보험공사 신임 사장에는 결국 내부 전문가가 아닌 친정부 인사가 낙점됐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공공금융업종본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지부는 지난달 차기 예보 사장 선임 관련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정부 중심의 인사 체계를 비판하고 차기 예보 사장 선출 투명성을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기자회견에서 금융사 부실을 예방하고 투자자와 예금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예보 사장은 전문성 있는 인사가 선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헌 공공금융업종본부 예보지부장은 "예보 사장은 예보기구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고, 공공기관 지배구조 탈피를 이뤄낼 역할을 맡고 있다"며 "정부 입맛에 맞춘 낙하산 인사가 아닌, 전문성 있는 인사가 차기 사장에 뽑혀야 할 것"이라고 재차 발언했다. 노조가 낙하산 인사를 꼬집으며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선발하라고 촉구에 나선 건 예보 사장 후보군 상당수가 정부 중심의 후보들로 채워졌던 탓이다. 예보제도 등을 운영하는 예보에 비전문가 사장이 내려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보는 지난해 11월 24일 차기 사장 후보 공모를 마감하고 지난달 5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면접을 진행해 차기 사장에 적합한 최종 후보 3인을 선출하는 등 사장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 차기 예보 사장 최종후보에는 예보에서 이력을 쌓은 김광남 전 예보 부사장과 함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권 출신 인사와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 출신 김성식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었다.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 김성식 변호사는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동안 예보 사장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서 이력을 쌓은 관료들이 주로 기용됐다. 전임자인 유재훈 사장도 행정고시 26회 출신으로 금융위와 기재부에서 각각 이력을 쌓고 2022년 예보 사장으로 취임한 관료 출신 사장이다. 김성식 신임 사장은 사법시험 28회 합격 후 인천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그는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로,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로 재임할 때 직권남용 혐의 관련 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은 최근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통한 기금관리 부담이 확대돼 향후 취임이 예정된 예보 사장의 역할이 막중해지면서 전문성을 갖춘 인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예보는 최근 예보기금 목표규모와 예보료율 조정에 착수해 금융권별 부담 구조를 재정비하는 작업에 나서는 등 예보제도 개편에 나서고 있다. 결국 비전문가 사장이 취임하면서 노동조합의 우려는 깊어진 상황으로 보인다. 아울러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은 지난달 29일 기관장 인선을 둘러싼 '낙하산 인사' 의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서금원 노동조합은 '김은경 교수 내정설'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4일 서금원은 신임 원장 후보 공개모집을 위한 면접을 진행한 후, 지원자 가운데 4명을 추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김 교수를 포함해 신임 원장 최종 후보로 거론되는 4인의 전문성과 경험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서금원장 솔리스트(최종 후보 명단)에는 김 교수 외에도 서금원 연관 경력을 보유한 후보가 3명이 포함됐고, 이 가운데 한 명은 관료 출신으로 알려졌다.김 교수는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소속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3년간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을 맡아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과 분쟁 조정 등을 총괄했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재직하던 2023년 '당 혁신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번 정부에서도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위원을 맡아 이 대통령의 경제 정책 성장축을 설계하는 데 기여했다. 김 교수의 선임이 유력한 가운데 서금원 노동조합은 '정부 보은 인사'라고 비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단순히 관 출신이란 점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기 보단 해당 조직의 업무 성격과 무관한 분야의 경력을 보유한 인사가 명목상 수장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단순히 관료 출신이기에 거부감을 갖는 게 아니라 해당 조직의 성격과 연관이 있는 분야에서의 경력을 쌓았다면 대관 네트워크 등 장점을 활용해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그가 어떤 출신인지 보단 해당 분야에서의 경력과 경험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예컨대 국회의원을 가정할 경우 정무 및 금융 영역에서 경력을 쌓았다면 이를 비롯해 국회 및 금융당국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 자리에 해당 분야와 전혀 관계 없는 인사가 오는 경우가 문제”라며 “단순히 관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뜬금없는 낙하산 인사가 난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청년일보=신정아 / 김두환 기자 】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