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약 3천370만명의 소비자 개인 정보를 유출한 쿠팡이 사태 축소를 위한 행보에 돌입했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쿠팡의 새로운 임시 대표 인사가 당국과의 장기적인 법적 갈등에 대비하기 위한 본격적인 '버티기'식 행보라고 평가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개인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국회 청문회 등 진상 규명 과정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긴급 현안질의에서 '책임'을 언급한 박대준 쿠팡 대표가 돌연 사임하는 한편, 쿠팡의 실질적 경영자인 김범석 의장이 '해외 체류'를 이유로 청문회에 불참을 통보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 거주하는 성인 대부분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실질적 경영자인 김 의장이 청문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는 행보는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전자상거래(이하 이커머스) 업계 1위 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감이 크나큰 실망감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책임 약속' 박대준 대표, 재발방지책 없이 사임…'법무 총괄' 외국인 임시대표 선임
먼저 업계와 소비자들은 박대준 전(前) 쿠팡 대표의 사임 과정에 대해 적잖은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10일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사유로 돌연 직에서 사임했다.
박 전 대표는 불과 사임 8일 전인 2일 국회 과방위에 참석해 개인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국회 과방위에서 한국 내 쿠팡 사업 전개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이에 대한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국감에서 여야(與野) 의원들의 질타에 "여러 우려 사항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에 더해 박 전 대표는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겠다는 발언도 남겼다. 구체적으로 그는 같은 자리에서 "한국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고, 제 책임하에서 벌어져 제가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한국 법인 대표로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사태를 해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재차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땅한 재발방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약 일주일 뒤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박 대표는 "이번 사태의 발생과 이후 수습 과정 전반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며 사임의 이유를 밝혔다.
반면, 이와 같은 그의 해명과 사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표의 사임이 '책임'이 아닌 '무책임'한 행보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분출하고 있다.
개인 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주로 사용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변경했다는 한 소비자는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이미 발생한 사건이 해결이라도 되는 것이냐"라며 "소비자를 대상으로 현재 정확히 어떤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유사한 사태를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대표직에서 사임하는 모습은 '책임을 지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 역시 "분명 국회에서는 '자신의 책임 하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며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 발언을 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마치 도망치듯 대표직을 사임해놓고 무슨 책임을 졌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 이후 선임한 임시 대표를 두고 개인 정보 유출 사태를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분출하고 있다.
쿠팡은 박 전 대표의 사임 이후 해롤드 로저스(Harold Rogers)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을 임시 대표로 선임한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가 외국인이라는 점과 쿠팡의 모기업인 쿠팡 Inc에서 '법무'를 총괄했다는 점에서 쿠팡이 이번 개인 정보 유출 사태를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외국인 출신 임시 대표를 선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쿠팡이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통상 청문회 질의 과정에서 외국 출신 증인이 참석할 경우, 질의응답 과정에서 통역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져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나,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들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모기업 임원 출신의 담당자가 쿠팡 임시 대표로 선임됐다는 점에서 쿠팡 측의 답변이 이전 긴급 현안질의 때보다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며 "쿠팡이 국민들에게 개인 정보 유출 사태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고,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이와 같은 인선을 단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와 함께 쿠팡 Inc의 법무총괄 담당자를 새로운 쿠팡 대표로 선임했다는 점에서 쿠팡 측이 이미 '위기관리' 체계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이번 사건에 대한 강력한 법적 조치를 예고한 만큼, 한국 사업 전개 과정에 있어 사태 수습이 아닌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업 인사에 밝은 한 경영계 인사는 "임시 대표로 모기업의 법무총괄 담당자를 선임했다는 것은 그 의도가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며 "더 이상 사태를 관망하지 않고, 법적인 영역에서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줄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팡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일단 차치하고, 당국에서 추후에 가해질 법리적 압박에 대해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는 영역"이라며 "일반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자사의 위기 상황에서 단행하는 인사, 특히 미국식 기업 인사의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개인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하고 신경을 안 쓴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받아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는 것보다 예방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을 갖출 수 있도록 제재 실효성을 높이겠다"며 "유출 사고 발생 기업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징벌적 과징금 특례'를 신설하겠다"고 예고했다.
◆김범석 의장 "바빠서 참석 못한다"…"소비자는 뒷전, 법적 리스크 최소화 모드 돌입"
이 가운데, 쿠팡의 실질적 경영자인 김 의장이 국회 청문회에 불참을 통보해 사회적 공분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국회 과방위는 오늘 쿠팡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등을 위해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회는 이미 2일 긴급 현안질의에서 청문회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은 "지속적으로 불성실한 자료 제출과 답변 태도로 일관한다면 김 의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청문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고, 실제 청문회가 오늘 열리게 됐다.
그러나,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이 있는 쿠팡 측의 주요 인사는 모두 불참을 통보했다.
먼저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박대준 쿠팡 전 대표, 강한승 쿠팡 전 대표는 더 이상 쿠팡 대표직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중 박 전 대표는 "본인은 쿠팡 침해 사고에 대해 지난 2일 귀 위원회와 3일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본인이 알고 있는바를 모두 답변드린 바 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쿠팡의 실질적 경영자인 김 의장 역시 청문회에 불참을 통보하며 업계의 비판 어린 시선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김 의장은 "본인은 현재 해외 거주하고 근무하는 중으로 전세계 170여 국가에서 영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공식적인 비즈니스 일정들이 있는 관계로 부득이하게 청문회에 출석이 불가함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고 불출석 사유서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당장 국회에서는 쿠팡 측이 사태에 대한 본질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 위원장은 "하나같이 무책임한 인정할 수 없는 사유들"이라며 "과방위원장으로서 불허하며, 과방위원들과 함께 합당한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과방위원들도 성명문에서 "쿠팡 증인 3인방 불출석 사유는 대한민국 국민을 기망하는 처사로 묵과할 수 없다"며 "3천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국가적 참사 앞에서 쿠팡 책임자들은 국민과 국회를 외면하고 줄행랑으로 선택했다"고 질타했다.
업계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계 전체의 망신살을 주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며 "국내에서 압도적인 1위 업체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쿠팡이 정작 대부분의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도망'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재발 방지책이라고 언급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제시도 없이,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 있는 청문회에서 두문불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추후 쿠팡 스스로에게 큰 리스크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쿠팡이 전형적인 '위기관리형 모드'로 진입했다며, 법적 리스크 최소화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경우 자사에 큰 위협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초기에는 대관 등을 통한 상황 관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법적 리스크를 축소하기 위한 체제로 인사를 단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쿠팡의 경우, 기업 및 소비자 간 거래(B2C)의 최전선에 있는 업체로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와 같은 공식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팡은 이전에도 공정거래위원회 등 당국과 수차례 충돌하며 법적 갈등을 빚은 바 있다"며 "대통령까지 이번 사태를 직접 언급하고 나선 이상, 쿠팡 측에서는 여론 관리를 후순위에 두고 실질적으로 과징금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당국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예고한 상황에서 쿠팡이 더 이상 사회적 비판 등 여론 관리에 신경 쓸 여력이 사라진 것 같다"며 "이번 임시 대표 선임은 향후 부과될 과징금 등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해롤드 로저스 임시 대표는 김 의장의 최측근으로서 그의 의중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라며 "다양한 소송전이 예고된 상황에서 이번 인사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김 의장은 현재까지 국회의 청문회 증인 출석 요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박 전 대표는 김 의장의 행방을 묻는 질의에 "정확히 모른다. 올해 만난 적이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