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 전경. [사진=롯데백화점]](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1043/art_17611123897311_84b2d8.png)
【 청년일보 】 국내 백화점업계에 오랜 기간 관행으로 이어진 입점업체와의 '특약매입계약'을 축소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약 형태로 인해 산업 트렌드를 선도해야 할 백화점업계의 중장기적 역량이 저하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는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국내 주요 백화점 3사는 주로 특약매입계약을 통해 입점업체와의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약매입계약은 유통업자가 판매 후 수익을 나누는 조건으로 상품을 외상으로 가져오고, 팔리지 않은 상품은 반품할 수 있는 거래 방식을 의미한다. 즉, 판매되지 않은 상품에 대한 재고 부담은 입점업체 측이 지게 된다.
이러한 계약 방식의 핵심은 백화점 측이 입점업체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인테리어 등 영업활동을 위한 제반 작업을 수행하고 상품의 가격 결정권을 입점업체 측에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백화점 측은 입점업체의 수익 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수취하게 된다.
국내 주요 백화점 3사의 경우 특약매입계약은 고착화돼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이들 백화점 3사의 특약매입 거래 비중 평균은 59.9%로, 전체 백화점 내 입점업체 10곳 중 6곳은 특약매입거래 계약을 통해 입점하는 셈이다.
작년 기준 가장 많은 특약매입계약을 체결 및 운영하는 곳은 현대백화점(62.1%)이었고, 롯데백화점(61.6%), 신세계백화점(56.0%) 등이 뒤를 따랐다.
최근 4년 평균(2021년~2024년) 기준으로도 현대백화점이 64.7%로 가장 높았고, 롯데백화점(63.4%), 신세계백화점(57.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공정위에 따르면, 특약매입거래 계약을 통해 입점업체가 백화점 측에 지불해야 하는 평균 수수료는 26.3%에 달한다. 특정 패션 카테고리 경우에는 평균 수수료가 30~40%에 육박하기도 한다.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전경. [사진=현대백화점]](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1043/art_17611124492263_78aa18.jpg)
문제는 이와 같은 계약을 통해 입점한 업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백화점이 아닌 입점업체가 쥐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계약 방식이 '백화점'이라는 대형 유통기업에 대한 신뢰에 기반해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는 백화점이라는 브랜드를 신뢰하고 매장을 방문해 상품을 구매한다"며 "특약매입계약 방식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교묘하게 져버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백화점 내에서 상품을 구매했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백화점이 아닌 해당 입점업체와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백화점은 마치 '판매 공간'만 제공하는 '부동산업자'처럼 유통 행위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특약매입거래 방식이 백화점업계 전반의 유통 역량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계약 방식은 백화점업계 실적에 가장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재고 부담'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재고 부담이 없는 만큼, 바이어와 상품기획자(MD) 등 현장 실무자들의 역량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소비 트렌드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패션 카테고리' 영역에서 특약매입거래 방식이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가중하고 있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업계 관계자들의 노력을 알고 있지만, 특약매입거래의 본질적인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백화점 측에서는 업계 트렌드를 발 빠르게 대응하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상품 판매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상품을 소싱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짚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선진적인 패션 트렌드를 가장 앞서 선보여야 할 백화점업계 실무자들이 업계와 상품 트렌드에는 관심을 전혀 두지 않고, 오히려 최적의 수수료를 수취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별해 입점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직매입' 방식을 택하고 있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백화점과 달리 재고 부담 즉, 자신이 들여오는 상품과 브랜드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이유가 없으니, 이들의 전문성도 함께 저하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의 주요국 백화점에서는 특약매입거래가 아닌 직매입을 통해 백화점이 직접 상품을 구매하고, 이를 소비자에 판매한다. 즉, 일선의 바이어와 MD가 '재고 관리'를 위해서라도 전문성을 끌어올려 소비자에게 유효하며, 트렌드을 따라가는 상품을 자신의 책임 하에 들여오는 방식이다.
이러한 직매입 방식의 경우에는 백화점이 상품에 대한 가격 결정권을 가진다.
다만, 가격 결정권을 백화점이 아닌 입점업체가 가진다는 특약매입거래 특성 역시 사실상 입점업체에 유효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한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백화점 측에서는 특약매입거래 방식이 브랜드 측에 가격 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내세워 '공정한 계약'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가격 결정권이 브랜드 측에 있다고 해도, 입점업체가 백화점에서 영업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계약 과정에서 백화점의 강한 압력과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브랜드 파워가 비교적 약한 국내 중소업체나 신진 업체들은 백화점 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일반적으로 계약과정에서 '협의 하'에 가격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수수료는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판매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특약매입거래"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경. [사진=신세계백화점]](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1043/art_17611124943086_da166a.jpg)
반면, 백화점업계는 특약매입계약이 제공하는 긍정적 영향도 있다고 강조한다.
한 백화점 업체 관계자는 "특약매입계약 방식을 백화점 측의 재고 부담을 없애고, 수수료만 취하는 일방적인 형태의 계약으로 인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오히려 직매입 방식보다 더 다양한 브랜드들이 백화점에 보다 손쉽게 입점할 수 있고, 백화점 입장에서도 여러 브랜드를 소비자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가격 결정권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백화점이 행사하는 하는 것 보다는 개별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욱 공정한 거래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만약 백화점이 가격 결정권을 가지다면,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의 자체 판매채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거래 방식이 우리나라와 일본이 처한 특수한 유통 환경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직매입 방식을 택하고 있는 미국 등 주요국의 경우에는 백화점 산업이 처음 태동할 당시 백화점보다 브랜드사가 더 강력한 유통 역량을 가졌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즉, 백화점보다 훨씬 먼저 사업을 시작한 브랜드사가 많았고, 이에 백화점은 이들 업체들의 상품을 '직접 큐레이션'해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상품을 선보인다는 차별점을 내세워야 한다는 불가피한 사업전략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백화점 업체가 등장했을 당시, 국내에 이렇다 할 브랜드사를 찾아볼 수 없었고, 유통시장 자체도 활성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백화점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특약매입거래 방식 덕분에 오히려 산업 트렌드를 더욱 발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주요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직매입 방식을 선택할 경우, 재고 관리에 대한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의사결정이 복잡하고 느려질 수밖에 없다"며 "실제 미국과 유럽 등은 트렌드 변화 주기가 한국과 일본에 비해서는 긴 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국내 백화점들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지의 백화점보다 보다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VIP를 관리하며 소비자에게 더 많은 실질적 혜택을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백화점 업체들이 특약매입계약 비중을 줄이고 직매입 방식을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유통업계에 정통한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 백화점업계가 태동할 당시, 일본의 영향과 국내 유통업의 미성숙으로 인해 특약매입거래 방식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특약매입거래 방식을 합리화하는데 이러한 요인은 의미를 상실했다"며 "특히, 최근 10여 년간 국내에서 등장한 브랜드 중 일부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반열에 오를 만큼 국내 브랜드 및 유통 역량이 충분히 성숙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위와 정치권에서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특약매입거래는 유통업계의 대표적인 '불공정 거래' 사례로 거론된다"며 "백화점업계의 중장기적인 사업 역량, 소비자 신뢰 강화 측면에서 직매입 형태의 거래를 점차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주요 경제단체의 한 기업 구조 전문가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특약매입계약에 기반한 국내 백화점 생태계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백화점이 트렌드를 선도하는 대표 산업이 아니라, '자릿세 장사'를 한다는 오명을 이제는 벗어야 할 시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단순히 영업이익을 끌어올리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백화점 측의 책임 하에 보다 엄선된 브랜드를 소비자에 제공하는 게 지속 가능한 역량과 소비자 신뢰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또한, 이를 통해 바이어, MD의 전문성을 끌어올려 양질의 인재를 꾸준히 양성하고, 이는 결국 기업 전반의 전문성과 역량을 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도 올해 2월 현대백화점의 '농약 우롱차' 사건을 계기로 특약매입계약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백화점은 단순히 공간을 임대하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실제 판매자이자 책임자"라며 "특약매입계약은 수익은 백화점으로, 위험에 대한 책임은 입점 브랜드가 가져가는 대표적인 불공정 계약 사례"라고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현대백화점의 농약 우롱차) 사건은 특약매입계약 형태로 입점한 업체에서 판매된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백화점을 신뢰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백화점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믿고 상품을 구매한다"며 해당 계약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