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장 없이 5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17조9천억원 규모의 올해 발주 계획을 확정하고도 최고 결정권자가 없어 실행에 차질을 빚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 임원추천위원회가 올린 내부 후보 3인을 전원 반려하고 재공모에 나섰다. 유력 후보로 꼽혔던 이헌욱 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마저 한국부동산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선 윤곽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 '대행의 대행'…의사결정 마비 5개월 경과
이한준 전 사장이 지난해 10월 면직된 뒤 이상욱 부사장이 직무대행을 맡았으나, 그마저 올해 1월 사의를 표명했다.
현재는 조경숙 주거복지본부장이 '대행의 대행'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지만, 직무대행 체제는 구조적으로 현상 유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동산 시장 한 관계자는 "LH가 올해 추진해야 할 착공 물량은 전국 9만6000가구(수도권 8만6000가구)다"라며 "정부의 9·7 공급 대책과 1·29 대책 이행도 LH의 실행 동력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수도권 135만 가구 공급' 계획에서 LH 몫은 41%"라며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조직 개편 같은 과감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고경영자가 없는 조직은 업무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3기 신도시 본청약 일정이 몰린 시기에 리더십 공백이 계속되면서 청약 대기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 내부 후보 전원 반려…"개혁 동력 확보 미흡"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전·현직 내부 인사 3인을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2009년 LH 통합 출범 이후 17년 만의 내부 출신 사장 배출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국토교통부는 이를 전면 거부했다.
LH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수행하기에 내부 인사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반려 사유로 명시했다.
2021년 LH 직원 투기 사태 이후 강력한 혁신안이 이행 중이지만, 내부 이해관계에 묶인 수장으로는 조직 문화를 바꾸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부가 추진 중으로 알려진 LH 이원화, '토지주택개발공사'와 공공임대 부채를 전담하는 '비축공사(토지주택은행)' 분리를 성사시키려면 외부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부는 비상임이사 9명 중 5명을 교체해 임원추천위원회를 재편하고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재공모 이전까지 가장 유력한 외부 후보는 이헌욱 전 GH 사장이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주거 정책인 '기본주택'을 설계한 인물로, LH를 통해 이 모델을 전국에 확산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이헌욱 전 사장이 한국부동산원 원장으로 임명되면서 LH 인선 구도는 재편됐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은 크게 세 갈래다.
정치권에서는 이성만 전 의원이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다. 행정고시 기술직 출신으로 인천시청에서 공직을 시작해 인천시의회 의장과 21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무형 전문가로 분류된다. 특히 지난 2월 대법원에서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해소했다는 평가다.
이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알고 있다"라며 "현재로서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김세용 고려대 교수가 주목받는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시절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적금주택)'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고, GH 사장으로 이 모델을 경기도형으로 확장했다.
특히 김 교수는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현 정부 주택 정책 설계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시민단체 출신인 김헌동 전 SH 사장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반값 아파트)과 분양 원가 공개를 강력히 추진한 이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사장은 이달 10일 SNS를 통해 "집 걱정 없는 대한민국 위해 다시 도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LH공사의 혁신과 소멸 위기의 지방 발전, 국토의 균형을 위해 30여 년 경험과 지식을 쏟겠다"며 "LH 재공모에 도전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료군에서는 주택 정책 요직을 두루 거친 김규철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이 조직 안정화 카드로 거론됐지만, 지난 23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했다.
◆ 17조9천억원 발주 확정…사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
LH는 사장 공백 속에서도 2026년 공사·용역 발주 계획 17조9천억원을 확정했다.
공공기관 중 최대 규모로 전체의 71%인 12조8천억원이 3기 신도시(남양주왕숙·인천계양·고양창릉·하남교산 등)에 집중 배정됐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에도 1조1천억원을 투입해 당초 2030년 예정이었던 착공을 올해 12월로 앞당길 계획이다.
문제는 역대급 발주 규모와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 리더십 사이의 간극이다. 수조 원대 사업의 최종 승인과 부처 간 협의는 권한이 한정된 직무대행 체제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특히 용인 산단처럼 착공 시기를 4년이나 앞당겨야 하는 고난도 과업은 신임 사장의 책임 경영 없이는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장 자리가 수개월째 공석이라 사업 추진력이 떨어질까 우려가 있다"며 "신임 사장 취임 시 대규모 발주와 조직 개편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4월 중 최종 후보를 압축하고 인사 검증을 거쳐 5월 이내 선임 절차를 마무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