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정부가 수도권 도심 곳곳에 6만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정부는 이 중 4만가구가 지난해 9·7 대책에 없던 '순증 물량'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 과거 좌초된 사업의 '패자부활전'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상지 상당수가 주민 반발이나 기관 간 이견으로 멈춰 섰던 곳들을 다시 꺼내 든 것이어서 '무늬만 순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공급 부족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 통상 수년이 걸리는 행정 절차를 대폭 단축해 당장 내후년인 2027년부터 착공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라는 강수까지 뒀지만, 오염토 정화와 지자체 이견 조율 등 물리적·행정적 난관이 산적해 실현 가능성에 적잖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통해 사업 속도 제고를 위해 2026년 중 공기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면제 추진 대상은 총 13곳이다. 서울 동대문구 국방연구원, 강남구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와 강남구청, 도봉구 쌍문동 교육연구시설 등 알짜 부지가 대거 포함됐다. 여기에 더해 공공주택지구 조성 사업에 대해서는 개발제한구역(GB) 해제 총량 예외를 5년간 한시적으로 인정해 인허가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속도전' 의지와 달리 현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군부대 부지의 토양 오염 정화 문제다. 이번 대책에는 용산 캠프킴, 강서 군부지, 금천 독산 공군부대 등 다수의 군 시설 이전 부지가 포함됐다. 군부대 부지는 기름 유출이나 중금속 오염 등으로 인해 정화 작업에만 최소 수년이 소요된다.
실제로 2천900호를 공급할 계획인 독산 공군부대의 경우, 정부 계획상으로도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오염토 정화를 거친 뒤에야 착공이 가능해 2027년 착공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501 정보대 부지는 토지 정화가 완료됐지만, 규모가 큰 다른 군부대들이 제때 정화를 마치지 못하면 전체 공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지자체와의 '엇박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예타 면제 등 중앙정부 차원의 절차는 단축할 수 있어도, 지구 지정과 인허가 과정에서 지자체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정부는 1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하지만, 서울시는 8천가구 선을 고수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태릉골프장(태릉CC) 역시 교통난과 세계유산 경관 훼손 우려로 지난 정부 때부터 진통을 겪어왔다. 정부는 물량을 6천800가구로 조정하고 세계유산 영향평가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으나, 서울시는 여전히 "그린벨트 해제 실효성이 낮다"며 부정적인 기류를 보이고 있다. 과천 경마장 부지 또한 아직 과천시와 구체적인 물량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예타 면제라는 행정적 지원만으로는 '2027년 착공' 시간표를 맞추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물리적인 정화 시간과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조정 시간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과거의 공급 대책들처럼 발표에만 그치고 실제 공급은 지연되는 '희망 고문'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정부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급 의지를 보여준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위원은 "도심 내 유휴부지는 한정된 자원인 만큼, 이를 기반으로 한 주택 공급은 단발성 처방에 그칠 우려가 크다"며 "장기적으로는 구도심 정비 등 도시재생과 연결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유휴부지를 일반분양하면 공공 소유의 토지가 소실되는 문제가 있다"며 "제한된 물량인 만큼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유지하되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에 확보한 도심 6만 가구를 주거비 부담에 시달리는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우선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주거 안정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구체적인 유형별 물량과 분양가, 공급 방식 등 세부 내용은 오는 3월 발표될 '주거복지 추진방안'으로 미뤄졌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